[DBR]새로 배운 내용을 남에게 설명해 줄때 느끼는 희열

김성모 기자 ,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입력 2019-02-20 03:00 수정 2019-02-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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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서 말한 ‘배움의 기쁨’ 지식을 얻어 기분이 좋아지고
배움을 통한 ‘실천’을 통해 또 한번 즐거움을 느끼게 돼
궁금한 대상에 ‘몰입’하면서 정신적 만족 느끼는 일과 같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논어’에서 배움은 경제적 이익 확보나 학위 취득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배움의 기쁨은 배운다는 일 자체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배움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기쁨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논어 첫 구절에서 ‘기쁘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열(說)’이라는 글자를 살펴봐야 한다.

논어가 역동적으로 편집되던 한나라 시대 ‘열(說)’은 기쁘다는 뜻의 ‘열(悅)’을 대신해 쓰이곤 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어떤 것이고,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실마리는 바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번째 구절(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찾을 수 있다. 즐거움을 나타내는 ‘락(樂)’과 기쁨을 나타내는 ‘열(說)’의 의미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또 배움에서 오는 기쁨과 친구와 함께하는 즐거움 사이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일본의 사상가 오규 소라이는 ‘열’과 ‘락’을 모두 배움의 맥락에서 해석했다. ‘학(學)’이라는 글자가 있기에 논어의 첫 번째 구절을 배움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일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문장을 어떻게 배움의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을까. 소라이는 이를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타인에게 가르치는 상황으로 해석한다. 즉, 두 번째 구절은 먼 곳에서 찾아온 친구에게 자신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의 과정을 통해 터득한 내용을 가르치는 모습을 묘사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이 ‘락(樂)’이라는 게 소라이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습(習)’은 왜 기쁨을 주는가. 중국 송나라 유학자인 사량좌는 실천을 강조했다. 사량좌는 “때맞춰 ‘익힌다(습·習)’는 것은 익히지 아니하는 때가 없다는 말이다. 시(尸·제사 때 죽은 이 대신 앉아 있는 아이)처럼 앉아 있는 것은 앉아 있을 때의 익힘이고, 제(齊·제사 때 엄숙히 서 있음)처럼 서 있는 것은 서 있을 때의 익힘이다”라고 밝혔다.

실천에서 오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외적 대상을 향한 몰입의 경험이 상당한 만족감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몰입에서 오는 만족감은 특정 대상에 열중할 때 생기는 고양감이다. 그러면 몰입은 어떤 경우에 생기는가. 그는 “몰입은 내면에 관심을 기울일 때보다 목전의 대상에 주목할 때 일어난다”고 역설한다.

이에 따르면 어려운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력을 쏟을 때 몰입이 가능해지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배움의 과정에서 몰입의 즐거움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논어의 첫 구절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kimyoungmin@snu.ac.kr
정리=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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