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그리운 ‘바보’ 김수환 추기경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입력 2019-02-20 03:00 수정 2019-02-2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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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수환 추기경(1922∼2009·사진)이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습니다. 16일 김 추기경 선종(善終) 10주기를 맞아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추모 사진전과 유품 전시회, 기념 음악회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어 고인을 기렸습니다.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는 김 추기경은 1922년 대구에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막내로 출생해 1951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1969년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당시 전 세계 추기경 136명 중 최연소였습니다.

추모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 앞에는 사진 대신 김 추기경이 스스로 ‘바보’라는 제목을 붙인 자화상이 놓였습니다. ‘바보’는 낮은 자세로 임하며 약자의 편에 섰던 그의 종교적 실천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김 추기경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던 민주화 인사들과 핍박받던 노동자들을 명동성당에서 끝까지 보호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김 추기경은 시위대를 잡기 위해 포진한 경찰 앞에서 “나를 넘고 여기 있는 사제와 수녀를 모두 밟고 가야 시위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당성을 잃은 국가 권력 앞에 당당히 맞섰습니다.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군홧발도 명동성당 앞에서 멈춰 서야 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김 추기경은 정말 바보처럼 우직하게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의 등불을 밝혔고,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가 됐습니다.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던 시기에 김 추기경은 종교를 넘어 사회의 큰 어른으로 울림 있는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그가 2009년 2월 16일 각막을 기증하고 선종하자 40여만 명이 조문했으며 장기 기증 운동이 파급되기도 했습니다.

김용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대신 읽은 추모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불의와 타협하거나 힘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를 배웠다”며 “오늘 추기경님이 더욱 그리운 까닭은 미움과 분열이 아닌 사랑과 화해를 기도하는 우리 시대의 스승이셨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교황청 대사인 슈에레브 대주교도 추모사를 통해 “교황님께서는 김 추기경이 이 땅의 민주화 역사에 영혼의 참된 목자로서 기여하신 특별한 역할을 상기하셨다”며 “김수환 추기경의 전구(傳求)를 통해 주님께서 이 땅의 지속적인 평화와 확고부동한 화해의 여정에 함께해 주시기를 빈다”며 한반도 평화를 염원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야당 국회의원의 발언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시끄럽습니다. 한반도 명운을 가를 평화 프로세스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요동치고 있습니다. 힘만 있으면 약자에게 갑질을 해대고 편 가르기가 난무합니다. 이런 각박한 세태에 김 추기경의 따뜻한 실천이 더욱 그립습니다. 혼탁한 사회에 빛을 보여줄 어른의 묵직한 꾸짖음을 듣고 싶습니다. 불의에 맞서며 약자들을 향했던 김수환 스테파노, 선종 10주기를 맞아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마지막 한마디를 되새겨 봅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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