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임희윤]소수의 독재는 무너진다… ‘바츠 전쟁’의 메시지

임희윤 문화부 기자

입력 2019-02-11 03:00 수정 2019-02-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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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문화부 기자
‘특히 거대 혈맹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중략)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게임 ‘리니지’의 한 유저)

2004년 6월 한반도에서 ‘바츠 해방 전쟁’이 발발한다.

이 전쟁은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펼쳐진 반독재 투쟁이다. 당시 리니지는 게임에서 높은 레벨을 획득한 유저들이 뭉친 독재 혈맹의 전횡이 극에 이르렀다. 그들은 레벨이 낮은 유저들의 필수 아이템에 높은 세율을 매겼고 사냥터를 독점했으며 무차별 척살도 자행했다. 일반 유저들의 불만은 커져 갔고 위에 옮긴 한 유저의 호소문이 퍼지면서 ‘바츠연합군’이 결성됐다. 전쟁이 일어났다. 2년여간 수십만 명이 참전했다.

마침내 독재 혈맹을 축출하던 날, 연합군 유저들은 전국 PC방에서 말없이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했던 기이한 싸움. 세계 게임 역사상 최대의 전쟁은 훗날 기록서(‘바츠 히스토리아’)와 소설(‘유령’), 미술 전시(‘바츠 혁명전’)로도 회자됐다.

바츠 해방 전쟁은 게임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치부하기엔 현실을 지독히 빼닮아 있다. 소수가 정치와 경제를 독점하며 다수를 탄압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줬다.

게임은 더 이상 놀이나 장난이 아니다. 몇 년 새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거대한 축이 됐다. 자본이 몰린다. 2018년 세계 게임 시장 규모는 약 1349억 달러(약 151조 원)다. 모바일 게임의 비중이 PC와 콘솔을 뛰어넘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남녀노소 휴대전화 게임에 빠져든 광경을 본다.

게임은 다른 모습으로도 광범위하게 일상에 침투한다. 영화, 드라마, 미술전 등 각종 문화 콘텐츠가 앞다퉈 게임 요소를 받아들이고 있다. 3월 국내에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가 상용화하면 증강현실, 가상현실 콘텐츠가 더 일반화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게임은 더 삶을 닮아가고 삶은 더 게임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도 개인의 욕망은 좀처럼 선한 쪽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사실 바츠 해방 전쟁의 진짜 결말도 해피엔드가 아니었다. 승전 뒤 연합군 일부는 내분과 타락으로 치달았다. 또 다른 독재가 나타났다.

게임의 일상화 또는 일상의 게임화는 사회를 빠르게 바꿀 것이다. 사회라는 게임의 서버 관리자, 즉 첨단 기술과 시스템을 장악한 소수가 타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게임에 중독된 스몸비(스마트폰 좀비)는 재미라는 과실에 눈먼 채 그들의 전횡에 길들여질지 모른다. 기꺼이 노예가 되려 하는 유저는 갈수록 더 늘어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진짜 해방 전쟁은 이제부터인지도 모른다.
 
임희윤 문화부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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