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한푼도 안쓰고 13.4년 모아야 한 채… “올해 가격 조정 불가피”

박재명 기자 , 조윤경 기자

입력 2019-01-26 03:00 수정 2019-01-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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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서울의 적정 집값은…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아파트 중 하나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경. 이 아파트는 지난해 8월 기준 전용면적 59㎡가 21억 원 안팎에 거래됐다. 동아일보DB
“서민들에게는 아직도 집값이 소득에 비해 높습니다. 집값 안정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란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이번 주 주택업계의 관심은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이 20일 청와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 쏠렸다.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등 수도권 집값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설계자인 김 실장의 발언이야말로 정부가 앞으로도 부동산 규제를 계속할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김 실장은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꺾였다는 시장 평가에 동의한다”면서도 “부동산은 여러 측면이 반영되는 시장이기 때문에 불안 현상이 있다면 지체 없이 추가 대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말에 (정부가) 집값이 더욱 안정되기를 원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암시도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부동산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정부가 집값 하락을 위한 추가 조치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서울 집값, 연봉 다 모아도 ‘13.4년’ 걸려

서민 소득에 비해 국내 집값이 높다는 김 실장의 말은 사실일까.

집값 거품을 측정하는 대표 지표인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을 연도별이나 세계 다른 주요 도시와 비교한 결과, 서울에 국한할 경우 소득 대비 집값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KB국민은행은 2009년부터 서울의 PIR를 집계하고 있다. 소득 1∼5분위 가운데 중간값(3분위)에 해당되는 주택이 가구 연소득 평균값의 몇 배에 달하는지 매달 계산하는 방식이다. 주택가격은 KB국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에 활용하는 내부 자료, 가구 소득은 통계청이 매 분기(3개월) 발표하는 지표를 사용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서울의 PIR는 13.4배에 달했다. 평균 수준의 소득을 버는 가정이 한 푼도 쓰지 않고 13.4년을 모아야 평균에 해당되는 집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5년 전인 2014년만 해도 8.8년을 꼬박 모으면 서울에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서울의 PIR는 2009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높았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 집값의 오름세가 워낙 높아 소득 대비 집값도 그만큼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2017년 11.2였던 PIR 배수는 지난해 13.4로 1년 만에 2.2가 상승했다. 이전까지 전년 대비로 가장 많이 올랐던 2016년의 상승폭(1.0)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KB국민은행은 2월에 지난해 4분기(10∼12월) 소득 통계를 활용해 새로운 소득 대비 집값 통계를 발표할 예정이다.


○ 서울 PIR, 시드니 밴쿠버와 비슷


연도별로는 서울 집값이 소득 대비 크게 올랐다. 그렇다면 전 세계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17년 3분기(7∼9월) 기준으로 전 세계 주요 도시의 PIR를 집계해 비교한 적이 있다. 국가별로 다른 주택기준 등을 별도로 통일해 계산한 것이다.

당시 서울은 11.2년을 꼬박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는 도시로 분류됐다. 홍콩(19.4) 베이징(17.1) 상하이(16.4) 등 중화권 도시보다는 주택 구입이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시드니(12.9) 캐나다 밴쿠버(12.6) 등 최근 집값이 급등한 도시와 비슷했다. 비싼 집값으로 악명이 높은 영국 런던(8.5) 미국 뉴욕(5.7) 일본 도쿄(4.8)보다 서울이 월등하게 높았다. 지난해 9월 서울의 PIR인 13.4를 대입하면 시드니, 밴쿠버를 넘어선다.

당시 연구를 진행한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별로 생기는 기준 차이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웠다”면서도 “서울 집값이 단기간에 크게 올라 거품 위험성이 있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도쿄나 뉴욕 등이 서울보다 소득 대비 집값이 싼 이유는 이들 도시가 광역 단위로 집값을 계산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서울은 서울특별시(약 605km²) 내 25개 구 평균 집값을 계산했지만, 도쿄는 서울 시내에 해당되는 23개 특별구 외에 이보다 넓은 수도권 개념에 가까운 도쿄도(東京都·약 2190km²) 평균 집값으로 소득 대비 집값을 계산한다. 뉴욕 역시 뉴욕주(州)의 평균 집값이 기준이 됐다.

이런 차이 때문에 당국에서도 소득 대비 집값을 중요한 주택 지표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국토교통부 당국자는 “PIR가 지나치게 오르면 그만큼 주택가격이 많이 오른 것으로 판단하는 간접 지표로 활용하는 정도”라며 “정책적으로 얼마만큼 떨어뜨리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건 아니다”고 했다. 국토부는 민간 기업인 KB국민은행 자료가 아니라 한국감정원의 내부 소득 대비 집값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 서울의 중간 아파트값 4년 만에 76% 올라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아닌 다른 수치를 보더라도 서울의 집값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이후 지난해 12월 말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12.00% 올랐다. 특히 강남 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의 아파트값은 평균 16.12% 올랐다. 송파구(19.02%)의 상승 폭이 가장 컸고 강동구(15.45%), 강남구(15.45%), 서초구(12.55%) 순이다. 강북에서도 마포구(14.15%), 용산구(14.00%) 등의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올랐다.

이 같은 가격 오름세의 결과는 전반적인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주택 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앙에 위치한 가격을 ‘중위가격’이라고 한다. 주택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판단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의 아파트 중위가격은 8억4502만 원이었다. 1년 전인 2017년 12월 6억8500만 원보다 23.4% 올랐다. 비교 기간을 넓혀 서울 주택 가격이 ‘대세 상승’을 시작했던 2014년 12월의 중위가격(4억7975만 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76.1%나 오른 셈이다.

이들 통계 외에 개별 아파트 실거래가를 봐도 서울의 집값 상승 추이는 뚜렷하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면적 84m²)는 현 정부 출범 당시인 2017년 5월 13억 원대에 거래되던 것이 지난해 12월 17억 원대에 거래됐다. 그나마 지난해 9월 한때 20억 원을 넘어서던 것이 한풀 꺾였다. 서울 강북지역 랜드마크 아파트로 손꼽히는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전용 84m²) 역시 2017년 9억 원 안팎이던 집값이 최근 14억 원 안팎까지 오른 상태다.




○ “올해는 집값 내릴 것” 전망 많아


서울의 현재 주택 가격이 거품인지 아닌지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소 갈린다. 한국주택학회장인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 정부 취임 이후 아파트값이 크게 올라 전체적으로 보면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2006년 실거래가와 비교할 때 80% 정도 오른 것인데, 소득 상승이나 물가 인상 등을 고려하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올해는 서울 주택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난해 4분기부터 시작된 가격 하락으로 서울 집값의 ‘거품 빼기’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KB국민은행 역시 올해는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올해는 정부 규제부터 시장 분위기까지 서울 집값이 떨어질 하방 압력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박재명 jmpark@donga.com·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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