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란 말을 지운 지은희, 우상 박세리 넘다

김종석 기자

입력 2019-01-22 03:00 수정 2019-01-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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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새해 첫 대회 14언더 우승… 32세 8개월, 한국인 최고령 기록
2009년 US여자오픈 뒤 긴 슬럼프, 8년 무관에도 굽히지 않고 견뎌
30세 2017년부터 3년째 트로피


지은희(33)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98년 골프를 시작했다. 당시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발휘해 ‘국민영웅’으로 떠오른 박세리(42)의 영향이었다. ‘세리 키즈’에서 어느덧 맏언니가 된 지은희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새해 첫 대회 우승과 함께 우상 박세리를 넘어섰다.

지은희는 21일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부에나비스타의 트란킬로골프장(파71)에서 열린 다이아몬드 리조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4라운드에서 1타를 줄여 최종 합계 14언더파로 이미림을 2타 차로 제치고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이로써 지은희는 박세리가 2010년 5월 당시 32세 7개월 18일에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 우승할 때 세운 한국인 LPGA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번 시즌 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지은희의 우승 기록은 32세 8개월 7일이다. 우승 상금은 18만 달러(약 2억 원).

지은희는 “원래 서른 살까지만 선수 생활을 하려 했는데 큰 영광이다. 내가 다시 내 기록을 깨보도록 노력하겠다”며 웃었다.

이날 그는 강풍과 섭씨 4도까지 내려간 날씨에 몸이 덜 풀려 1, 2번홀 연속 보기로 불안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3번홀에서 15야드 칩 인 버디로 분위기를 되살렸다. 15번홀 보기로 이미림에게 1타 차로 쫓겼으나 16번홀에서 정교한 어프로치 샷으로 공을 홀 50cm에 붙인 뒤 버디를 추가해 2타 차로 달아났다.

지은희에게 처음 골프채를 쥐여준 건 수상스키 국가대표 출신인 아버지 지영기 씨다. 강원 춘천시 남이섬 부근에서 태어난 지은희는 다섯 살 때부터 수상스키를 타며 강심장을 길렀다. 학창 시절 마땅한 연습장이 없어 북한강에 거리를 표시한 스티로폼 부표를 설치해 놓고 아이언샷을 연마해 거리 감각이 뛰어나다.

2007년 대기선수로 LPGA투어에 입성한 뒤 2009년 박세리처럼 US여자오픈 타이틀을 안을 때만 해도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비거리를 늘리려고 무리하게 스윙 교정을 하다 8년 동안 203개 대회에서 무관에 그쳤다. 30대에 접어들어 2017년 대만 챔피언십에서 모처럼 우승한 뒤 지난해 KIA 클래식에서 승수를 추가했다. 3년 연속 정상에 올라 통산 5승째를 거뒀다.

그는 오랜 슬럼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2018시즌을 앞두고 간결한 스윙을 위해 야구방망이까지 휘둘렀다. 지난해 말에는 한 달 가까이 김상균 한화큐셀 골프단 감독과 스윙 재교정에 매달렸다. 지은희는 “백스윙에서 몸이 많이 돌아가면서 채가 뒤로 처져서 내려오는 경향이 있었다. 백스윙 크기를 줄이고 다운스윙에서 오른쪽 무릎이 구부러지는 단점을 보완하니 탄도가 낮아지고 공의 스핀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하겠다는 의지가 유달리 강하다. 늘 노력하는 스타일이다”라고 칭찬했다.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미키마우스란 별명이 붙은 지은희는 “스윙을 교정 중인데 첫 대회에서 우승해 자신감이 커졌다. 상금왕을 노리겠다”고 말했다.

지은희가 우승 스타트를 끊으면서 한국 선수들의 시즌 전망도 밝아졌다. 한국 선수는 최근 홀수해인 2015년과 2017년 역대 최다인 시즌 15승을 합작했다.

이 대회에서는 지난 2년간 LPGA투어 우승자와 스포츠 연예 스타 49명이 어울려 경기를 치렀다. 지은희와 같은 조로 플레이한 메이저리그 전설의 투수 존 스몰츠(52)는 최종 합계 149점으로 명사 부문 1위를 차지해 상금 10만 달러를 거머쥐었다. 명사들은 이글 5점, 버디 3점, 파 2점, 보기 1점, 더블 보기 이하는 0점 등 각 홀 결과를 점수로 환산해 승부를 가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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