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원희 고려사이버대 교수/MBO로 본 칠천량 해전

동아경제

입력 2019-01-10 09:00 수정 2019-01-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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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희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목표관리(MBO: management by objectives)는 1954년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쓴 ‘The Practice of Management’라는 책을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는 경영자와 종업원들이 설정된 목표에 동의하고 그들이 조직 내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영자는 목표만 제시하고 목표달성방법을 종업원에게 맡기거나 목표설정까지도 종업원에게 맡기는 것이다. 어느 경우이건 경영자는 명령하지 않고 종업원들이 자주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주고 종업원 상호 간에 조정을 하게 한다.

목표관리 개념을 임진왜란 중 조선수군의 유일한 패전으로 기록된 칠천량 해전에 적용하면 경영자는 임금인 선조, 중요 종업원은 이순신과 원균이 된다. 이외에도 권율, 김응수 등이 있지만 이 둘이 핵심 종업원이다. 가등청정 척살과 부산포 공격이라는 목표 설정, 목표에 대한 이순신과 원균의 동의 여부, 목표달성을 위한 구체적 실행과정을 살펴보면서 경영자의 조급함이 대실패를 초래할 수 있음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임진왜란(1592~1598)에 개입한 명나라와 일본 사이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풍신수길은 조선의 재침략(정유재란, 1597)을 결심하고 이러한 정보를 흘린다. 선조는 왜군이 다시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순신으로 하여금 일본수군의 선봉장인 가등청정을 척살하고 부산포를 공격할 것을 명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선조의 명을 거부한다.

첫째, 적장의 지시대로 병사를 출동시킨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병법에 없다. 둘째, 병법으로 말하면 부산은 사지(死地)이다. 셋째, 지금 한산도를 지키고 있으면 적의 목을 9할은 조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이에 가등청정이 부산포에 도착하자 이순신을 파직, 하옥시키고 고문을 한다. 이것이 손자병법의 제3계인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라는 고도의 책략이다. 선조는 이순신 밑에 있던 원균을 3도 수군통제사로 임명해 다시 부산포를 공격할 것을 명한다. 원균도 이순신이 든 세 가지 이유 중 두 가지를 들어 선조의 명을 거부한다. 그러자 도원수(종2품 상) 권율이 3도 수군통제사(종2품 하) 원균의 곤장을 치는 사태가 발생하고 선전관 김식이 부산포로 출정하라는 어명을 가지고 나타나자 원균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1597년 7월 5일 거북선 4척, 판옥선 180여척, 협선과 포작선 200여척을 가지고 출정을 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수군은 판옥선 200여척, 포작선 400여척을 보유했는데 판옥선이 조선수군의 주력임을 감안하면 원균의 출전에는 조선수군의 군사력 대부분이 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균은 부산 앞바다에서 왜 수군과 소규모 전투에서 패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7월 14일 칠천량으로 후퇴하여 포구에 정박하였다. 7월 16일 새벽 대여섯 척의 왜선이 기습공격을 해 왔고 조선수군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이미 포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1천여척의 왜 함선들이 공격해 들어와 조선수군은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이것이 칠천량 해전이다.

칠천량 해전을 목표관리에 대입해 해석해 보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투였다. 무엇보다도 싸움도 시작하기 전에 적의 치밀한 정보전에 속아 19전 19승 중인 중요한 종업원 이순신을 파직, 하옥시켰다. 가등청정의 척살과 부산포 공격이라는 목표는 어떻게 설정되었는가? 이는 선조라는 최고경영자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목표이다. 당시가 전쟁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조의 이러한 목표설정에 이순신과 원균도 묵시적으로 동의했을 수 있다. 명분상으로도 가등청정을 죽이지 말자거나 부산포를 공격하지 말자고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표달성방법이다. 목표관리의 입장에서 보면 경영자는 목표만 제시하고 달성방법은 종업원에게 맡겨야 하는데 칠천량 해전의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선조는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이의 달성을 닦달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실행에 옮길 수 없음을 말하는 종업원은 파직과 함께 하옥시키고 다른 종업원에게는 곤장을 치고 직접 출전명령을 내렸다. 경영자는 명령하지 않고 종업원들이 자주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준다는 목표관리의 기본원칙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무시되다 보니 원균은 물론 19전 19승중인 이순신마저도 현장전문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칠천량 해전은 최고경영자가 원칙을 지키지 않고 현장의 의견을 무시하면 치명적인 대가를 치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김원희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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