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나’를 파괴하기 전 통찰 연마하라”

손효림 문화부 차장

입력 2019-01-07 03:00 수정 2019-01-0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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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세계적으로 ‘핫한’ 학자-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일부 독자가 자신을 구루(Guru)로 여기려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누군가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순간, 스스로 답을 얻으려는 노력을 멈추게 되고 (구루가)틀린 답을 내놓아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늘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사 제공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자국 이기주의가 맹렬하게 충돌하고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세상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등을 통해 거시적인 안목으로 인류 역사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고 통찰한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43)와 이야기를 나눴다.》

―미중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세계적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미국과 중국이 무역보다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기술개발 경쟁을 하는 것이 더 걱정된다. 두 나라는 AI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여기고 있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영국, 프랑스, 일본처럼 산업화를 먼저 이룬 나라들이 다른 나라를 착취하고 지배했던 역사가 21세기에 AI를 두고 반복될 수 있다. AI 경쟁에서 이긴 나라는 세계는 물론 생명체의 미래를 통째로 지배할 것이다. AI와 생명공학은 개발 단계에서 윤리적 문제에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규제해야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 모든 규제는 무너질 것이다. 가령 사람을 죽이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 무기 시스템을 개발한다고 생각해보자. 각국은 이를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경쟁 국가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서로 먼저 개발하려 할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국가 간 더 큰 신뢰를 쌓아야 한다. 불행히도 미국과 중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

―자국 이기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유엔 같은 기존 기구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을까.

“민족주의의 부상은 인류가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다. 민족주의는 한 국가를 운영하는 데는 긍정적인 점이 많지만 세계적 난제를 함께 푸는 데는 걸림돌이 된다. 과거 국경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들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핵전쟁, 기후 변화에서 정부는 다른 국가와의 협력 없이 자국민을 보호할 수 없다. 전 지구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애국주의는 동포의 안녕과 번영을 지키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타국인들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좋은 애국주의자들은 이제 세계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세계 정부를 수립하라는 것은 아니다.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 또는 도시가 세계적인 문제에 중점을 두고 이를 풀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 때 정치인에게 질문하라. △핵전쟁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할 것인가 △기후 변화 위기를 줄이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AI, 생명공학 기술로 인한 위험을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인가 △2040년 세계의 모습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와 최고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이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미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에게는 표를 던지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기술과 그에 따른 사회 현상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기술의 진보는 정보공학과 생명공학의 융합이다. 충분한 생물학적 지식과 데이터, 컴퓨터 기술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킹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타인의 선택을 예측하고 욕망을 조작할 수 있다. 최악은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인간의 계급이 나눠지는 것이다. 생명공학은 소수의 엘리트를 초인으로 만들 수 있고, 생체인식센서로 정부가 개인의 말과 행동, 생각과 감정까지 직접 감시할 수 있다. 광기에 사로잡힌 종교집단이 이들 기술을 사용하면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펼쳐질 수 있다.

물론 기술이 인간을 질병과 과도한 노동에서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계발할 수 있다. 한데 현재의 움직임은 부정적 시나리오를 향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국가들이 신생아에게 유전공학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만약 중국만 이를 허락한다면 뒤처지고 싶지 않은 국가들은 이를 앞다퉈 사용할 것이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2050년의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낡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것은 분명하다. 새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교육이 석조주택처럼 단단하게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면 이제는 쉽게 접었다 펼 수 있고 이동 가능한 텐트처럼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저서들이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사피엔스’는 국내에서 65만 권, ‘호모데우스’는 25만 권,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10만 권이 판매됐다. 뜨거운 반응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정 국가나 문화의 지엽적인 역사만 알아서는 안 된다. 유럽 지도자의 정치적 판단, 샌프란시스코 엔지니어의 기술 혁명, 인도 공장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개개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책을 통해 세계 역사와 인류가 처한 위기를 이해하려 애쓴 것이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든 것 같다. 내 책은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나 역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로 여겨주길 바란다.”

―글쓰기와 인생에 영향을 준 작가, 예술가가 있는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다. 그는 어떻게 과학자가 역사의 큰 질문을 탐구하고, 글을 이해하기 쉽게 쓸 수 있는지 보여줬다. 내가 ‘사피엔스’를 쓸 용기를 줬다. 나의 멘토인 베냐민 케다르 히브리대 교수도 있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수학자 캐시 오닐,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글에서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한국인도 있다. 숭산 스님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이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인 ‘오직 모를 뿐’은 내 연구에도 큰 영향을 줬다. 당신이 무언가를 모른다면 상상의 이론을 만들어내서는 안 되며 모르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해주셨다.”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런의 ‘How to Change Your Mind’, 구글차이나 사장을 지낸 리카이푸의 ‘AI Superpowers’, 스티븐 핑커의 ‘Enlightenment Now: The Case for Reason, Science, Humanism and Progress’,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의 ‘The Road to Unfreedom’이 좋았다.”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습관이 있는가.

“2월까지 두 달 동안 명상 수행을 한다. 명상을 통해 얻은 집중력과 통찰이 없었다면 아무 책도 못 썼을 것이다. 무엇을 할지는 계획이 없다. 그냥 열린 채로 두는 것을 선호한다. 독자들에게는 명상을 권하고 싶다. 마음의 평화와 함께 자신을 잘 알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정부, 기업이 우리를 더 잘 알게 되면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팔거나 선거에서 표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스포츠, 예술 등 다른 방법도 많지만, 무엇이든 하루빨리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고리즘이 우리를 산산조각 내기까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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