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염철현 고려사이버대 교수/한국의 사이버대학 들여다보기

동아일보

입력 2019-01-03 11:38 수정 2019-01-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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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현 고려사이버대 평생·직업교육학과 교수
한국의 사이버대학은 2001년 출범했다. 후년이면 스무 살의 성인이다. 출범 초기 사회적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공부하는 학교라는 생각에 전자상거래를 연상한 사람도 많았다. 교사(校舍)를 중심으로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물리적 공간으로 학교를 생각한다면 선뜻 ‘학교’라고 부르기가 어색했을 법도 하다.

초창기 사이버대학이 오프라인의 일반대학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가슴 아픈 에피소드가 많다. 2003년으로 기억한다. 우리대학 총장님이 지방 소재 국립대 총장님을 예방하여 우리대학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셨다. 진지하게 경청하시던 그 총장님 왈, “대체나 대학은 대학이네요.” ‘대’자로 시작하여 ‘대’자로 끝났다. 이후 분위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이버대를 대학 축에 끼워 넣어준 것만 해도 후한 평가였다. 한 가지 더 소개하자. 사이버대생들도 엄연히 같은 대학생임에도 일반대생들이 받는 혜택에서 배제되었다. 예컨대 박물관 입장료, 교통할인권, 국제학생증 등이 적용되지 않았다. 평생교육법에 근거하여 설립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고등교육법을 개정하고 나서야 제도적 차별은 사라졌다.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이었다. 그때 겪었을 우리 학생들의 차별을 생각하면 미안하다.

그랬던 한국의 사이버대학이 숫자로 스무 개가 넘었고 10만 명 가까운 학생들이 공부하는 명실상부 고등교육기관이 되었다. 엄청난 양적 도약이 아닐 수 없다. 초창기 사이버대학의 재학생의 연령대는 4, 50대가 주축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2, 30대의 젊은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국내외를 망라한다. 우리 대학만 해도 해외 50여국에 재학생이 분포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의 선진국가들은 물론 아프리카 세네갈, 케냐, 남미의 브라질, 남태평양의 피지, 중동의 아랍에미레이트 등 오대양 육대주에서 시공을 초월한 유비쿼터스 교육이 펼쳐지고 있다. 재학생들의 8, 90%는 직업과 학업을 병행한다. 직장도 다양하다. 법률가, 의사, 컬링선수, 연극인, 마술사, 조종사, 관제사, 미용사, 교육자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직종에 근무한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다. 교수라고 목에 힘주면 큰 일 난다. 교학상장의 자세로 가르치고 함께 배워야 한다.

사이버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다닐까? 크게 다섯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유형은 직무능력의 향상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들은 2, 30대로 실무적인 지식 습득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주로 공학계열의 기계, 전기전자,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을 전공하고, 인문사회계열에서는 경영, 법, 실용외국어, 사회복지, 상담심리 등에 관심이 많다. 낮에는 직장에서 근무하고 야간이나 주말 시간을 이용하여 공부하는 전형적인 주경야독의 학습자다.

둘째 유형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상위학위취득을 목표로 한다. 실제 우리대학 졸업자 중 상당수가 대학원 석박사과정에 진학하여 보다 전문적이고 심화된 공부를 한다. 이 유형의 학습자들은 학기마다 학점 관리를 철저히 하고 선후배 간의 정보 교류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높다.

셋째 유형은 인생의 이모작을 준비하기 위해 입학한다. 사오정과 오륙도가 일반적인 직장문화가 된 상황에서 은퇴 후의 사회활동을 준비한다. 이 유형의 학습자들은 사회복지, 평생교육, 상담, 보육 등 자신의 사회 경험과 직업의 노하우를 적용할 수 있는 분야에 관심이 높다. 이들 중에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학습전략을 짜서 공부하고 자격증 취득 등 사회적 활동과 연계되는 과목에 관심이 많다.

넷째 유형은 배움의 한(恨)을 풀기 위해 입학한다. 비교적 고령층의 학습자로서 배울 시기에 장남 또는 장녀라는 이유로 동생에게 배움의 기회를 양보했다거나, 학비가 없어 중도에 학교를 그만 둔 경우, 그리고 전쟁 등 재난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다. 이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입학, 축제, 졸업 등 학교 행사에 손자손녀를 데리고 와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니는 학교를 자랑한다. 이들 학습자의 삶 속에 배움의 한이 얼마나 큰 가슴의 응어리가 되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다섯째 유형의 학습자들은 배움이나 학습 그 자체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를 실천하는 학습자들이다. 이들은 배운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세상 살면서 다른 것 다 해보았는데 호학(好學)만큼 즐겁고 유익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배움을 통해 자아실현의 욕구를 실현하고자 공부한다.

이제 사이버대학을 “대체나 대학은 대학이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어떻게 공부하고 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라고 묻는다. 사회적 인지도는 웬만한 대학보다 높으면 높지 결코 낮지 않다. 사이버대학 자체의 품격을 업그레이드할 때다. 필자는 사이버대학이 사회적 신뢰와 함께 지속성장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이슈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습자와 교수 간 상호작용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사이버대학의 기회이면서 동시에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먼저 평가의 신뢰도 확보 문제는 사이버대학의 출범과 함께 줄곧 따라붙는 이슈다. 학교에 출석하여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고 가정이나 직장에서 시험을 본다는 점에서 평가의 객관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는 동일 IP 사용자를 관리, 통제하지만 오픈북 형태의 시험방식으로는 일반학교와 같은 평가의 엄중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평가의 객관성을 조금이나마 더 확보하기 위해 객관식 평가보다 리포트 평가를 선호한다. 일반학교에서 사지선다형 문제를 지겹도록 푼 성인학습자들을 위한 평가는 그들의 풍부한 사회적 경험을 활용한 문제해결력을 판단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교수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이다. 보통 사이버대학의 이슈로 콘텐츠의 품질을 꼽는데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콘텐츠는 기술과 자본을 접목하면 단시간 내에 개선될 수 있다. 인체에 비유하면 뼈대에 해당하는 콘텐츠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하는 것은 교수와 학생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 만남이 교육에 선행해야 한다. 그들의 감성에 울림을 줄 때 사이버대 강의는 지식전달의 매체가 아닌 성인학습자의 경험과 지혜를 융합시키는 교육의 마당(場)이 되고 지속성장을 위한 튼튼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염철현 고려사이버대 평생·직업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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