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봐줄 사람 없어 요양병원 전전? 이제 내 집에서 건강관리 받는다
조건희 기자
입력 2018-12-27 03:00 수정 2018-12-27 03:00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최경애 사회사업팀장(왼쪽)이 퇴원을 앞둔 환자를 상담해 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처럼 퇴원 환자에게 지역 복지 서비스를 안내해 주는 ‘지역연계실’을 2022년까지 전국 병원에 설치할 계획이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제공
“440만 원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18일 오른팔에 깁스를 한 A 씨(45·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A 씨는 자활근로 중 팔이 부러졌지만 진료비 440만 원을 구하지 못해 퇴원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담사가 휴지를 건넸다.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1층 ‘사회사업팀 상담실’에 비치된 휴지 한 통은 일주일을 버티지 못한다. A 씨처럼 퇴원 후가 막막한 환자들이 상담 중 마음속 응어리를 눈물과 함께 쏟아내기 때문이다.
○ 퇴원 후가 막막한 환자에게 상담서비스
A 씨는 팔이 부러진 후 자활근로를 주선해준 지방자치단체에 산업재해 보험금을 신청했지만 민간 실손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한동안 보험료를 내지 못해 정작 실손보험 혜택은 받지 못했다. 복지제도의 엄격한 기준과 절차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이다. A 씨는 “병원비를 내지 못해 범죄자가 되느니 그냥 창문으로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의료사회복지사인 상담사는 A 씨와 마주 앉아 관할 구청과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1시간 반 동안 네 군데에 전화를 돌린 끝에 A 씨는 ‘긴급복지 의료지원’ 대상자로 판정돼 100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산재 처리도 신속히 진행돼 일주일 만에 나머지 진료비를 내고 퇴원할 수 있었다. 상담사는 A 씨가 퇴원 후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집 근처 정형외과를 소개해줬다. 또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A 씨의 고등학생 아들에겐 점심 값 바우처 제도를 안내했다.
강남성심병원 사회사업팀은 A 씨처럼 병원비를 내지 못하거나 퇴원 후 갈 곳이 없는 환자와 상담해 해결책을 찾는 곳이다. 지난해 초 뇌출혈로 쓰러진 뒤 폐렴이 겹쳐 중환자실에 입원한 B 씨(59)도 마찬가지였다. B 씨는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아 ‘거주 불명’으로 분류된 탓에 건강보험은 물론이고 의료급여 혜택도 받지 못했다. 담당 상담사는 오래전 진료기록을 통해 B 씨와 20년 전 연락이 끊긴 그의 형을 찾아내 설득한 끝에 B 씨의 주민등록 기록을 되살리고 재활치료가 가능한 요양원을 소개할 수 있었다.
○ 전국 병원 2000여 곳에 지역 연계실 설치
A 씨와 B 씨처럼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복지 서비스를 안내받는 경우는 드물다. 대다수는 지낼 곳도, 돌봐줄 사람도 없다는 이유로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여생을 보낸다.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비율은 2007년 60%에서 지난해 76.2%로 높아졌다. 노숙인 시설을 전전하며 제대로 된 건강관리를 받지 못하다가 다시 병세가 나빠져 병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보건복지부는 강남성심병원 사회사업팀처럼 퇴원 환자가 지역 내에서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알아봐주는 ‘지역 연계실’을 내년 3월부터 일부 병원에서 시범 운영한 뒤 2022년 전국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2000여 곳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26일 밝혔다. 환자들이 요양시설이 아닌 집에서 쉽게 방문 진료 및 간호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 케어) 기본 계획’의 일환이다.
복지부는 요양병원에 우선적으로 지역 연계실을 설치할 방침이다.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집에서 지낼 수 있음에도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요양병원을 전전하는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이 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한 해 요양병원에 석 달 이상 입원한 환자는 2013년 18만5972명에서 지난해 26만6675명으로 늘었다. 이들에게 투입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재정은 같은 기간 3조7516억 원에서 6조235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배병준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커뮤니티 케어 추진위원장)은 “의료서비스와 지역 내 복지서비스를 자기가 살던 곳에서 중단 없이 받을 수 있으려면 병원에 지역 연계실을 빠짐없이 설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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