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늘 자신을 비워 남에게 준 존재”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8-12-03 03:00 수정 2018-12-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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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굽는 엄마’ 출간 김요한 목사

청바지 입는 목사로도 알려진 대전 함께하는교회의 김요한 목사. 지하의 예배 공간은 영화 상영과 공연이 가능하도록 꾸며져 있다. 대전=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재미있는 것은 수학의 원주율을 가리키는 파이(π)와 서양의 디저트 파이(Pie)의 발음이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엄마의 생일이 3월 14일, 바로 3.14죠.”

아들의 눈에 비친 어머니는 일종의 신비였을지 모른다. 아버지를 따라 20대에 미국을 떠나 한국에 온 어머니는 장애인 학교에서 가르치고 항상 매혹적인 냄새의 파이를 구워 냈다. 수영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본 누군가가 “저 외국인 파출부 어디서 구하셨어요”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녀의 삶은 사랑과 헌신 그 자체였으니까.

김요한 목사(51)와 어머니 트루디 여사(80). 김 목사는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의 2남 1녀 중 막내로 형 김요셉 목사(수원 원천침례교회)와 3부자 목회자로도 알려져 있다. 최근 ‘파이 굽는 엄마’(바이북스)를 출간한 김요한 목사를 지난달 30일 대전 함께하는교회에서 만났다.

이 책은 사진작가 유재호 씨가 1년에 걸쳐 파이 가게를 중심으로 찍은 트루디 여사의 사진과 김 목사의 글이 어우러진 포토 에세이다. ‘엄마의 망가진 손’ ‘파이의 밑바닥’ ‘식탁’ 등 어머니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사진과 아들의 단상이 여운을 준다.

그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일까. “책에서 ‘엄마는 없다’고 했어요. 그것은 있고 없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자신을 내어줘 정작 자신은 비어 있다는 의미죠. 바다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늘이 높고 멀리 있는 반면 바다는 가깝고 넓고 받아주니까요.”

트루디 여사(왼쪽)와 김요한 목사. 김요한 목사 제공
아버지가 교계 원로인 김장환 목사라는 사실은 축복이자 어려움일 수도 있다. 아들 목사는 “교회 신자들의 눈 때문에 ‘항상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면서도 뜻밖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5, 6년 전 아내에게 얘기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죠. 남자의 로망 아닙니까.(웃음)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하시는 겁니다. 속으로 ‘이거 죽었구나’ 했죠. 그런데 가죽 점퍼를 주면서 ‘오토바이 타려면 이걸 입어라’ 하는 거 있죠. 아버지의 사랑이 이렇게 나오나 싶어 울컥했어요.”

의외로 대(代)를 이은 목회에 대해 아버지의 언급은 없었다는 게 김 목사의 말이다. 그는 미국에서 열린 형태의 교회를 접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만났다. 대전 함께하는교회는 그의 꿈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지상 4층, 지하 2층 교회에는 대형 십자가가 없다. 실내 체육관과 놀이시설, 요리·사진 등 각종 소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지하 예배 공간에는 영화 상영과 공연이 가능한 시설들이 있다.

“신앙과 세대 차이 등으로 교회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가 열려 있어야 사회의 다양한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다리(bridge)가 될 수 있습니다.”

특성을 잘 살린 작은 교회들에서 그의 목회 방향을 엿볼 수 있다. 홍대가까운교회, 보리떡교회, 링크교회 등 지역과 나이 등을 감안한 5개 교회가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담임 목사가 아니라 여러 목회자들이 몇 개월씩 돌아가며 설교를 맡고 있다.

이 책은 바다 같은 어머니 삶에 대한 아들의 감사 편지일지도 모른다. 2006년부터 희귀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으로 투병해 온 어머니는 한때 위기를 맞았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건강이 다소 좋아진 상태라고 한다. “어머니가 걷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는 가벼운 산보만 가능해 안타까워요. 건강 때문에 파이숍도 쉬고 계시고요. 하우스(house)와 홈(home)의 차이는 ‘파이를 굽는 어머니’가 있고 없고의 차이 아닐까요.”
 
대전=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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