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만 보고 오기엔 아쉬울 걸…강화도 재발견 여행

뉴스1

입력 2018-11-26 08:38:00 수정 2018-11-26 08: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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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한옥 성당에 북한과 맞닿은 교동도까지

강화도라고 하면 그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섬 여행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바다만 휙 둘러보고 오면 강화도의 매력적인 곳들을 놓칠 수 있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면적이 큰 섬으로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종교만 봐도 그렇다. 강화도는 불교, 원불교, 기독교, 천주교, 성공회가 어우러진 종교의 집합소 같은 곳이다.

단군에게 제사를 지낸 마니산의 첨성단부터 약 40년간 고려 왕조의 임시수도 당시 중수된 우리나라 최초의 절인 ‘전등사’가 있다.

또 1883년 조선 최초로 개항한 제물포항에 이어 가장 먼저 선교사가 들어온 지역 중 하나다. 서구 열강이 만들어 낸 ‘근대’ 문물이 잔뜩 들어와 그야말로 동서양 문명이 충돌하는 최전선이다.

◇절이 아니야?…우리나라 최초 한옥 성당

강화도는 우리나라 성공회의 본향이자 본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공회 한옥 성당이 지닌 가치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성당을 상징하는 서울 명동성당이나 전주 정동성당은 유럽풍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반면 강화도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한식이다.

강화읍 고려궁지로 올라가는 언덕 위엔 지어진 ‘성공회 강화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당이다. 언뜻 절 같기도 또는 궁궐 같아 보이는 성당은 1990년에 지워졌을 때 그 모습 그대로다.

이 성당의 재미난 점은 지붕 위 십자가와 내부를 보기 전까진 성당이라고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 성공회 신부들이 강화도 토착민들에게 최대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한국식 성당을 택해 그렇다.

이 성당의 설계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 일했던 도편수가 맡았다.

성당에서 절의 느낌을 받게 된다면, 우연이 아니다. 외형은 불교 사찰의 건축양식을 차용했으며, 백두산 원시림의 적송을 뗏목으로 운반해 목자재로 만들었다. 성당 마당 내엔 보리수나무가 두 그루나 있다.

예배시간을 알리기 위한 커다란 종도 일반적인 예배당 종이 아니라 절에 있는 ‘범종’과 닮았다.

실내 공간에 들어가면 또 한 번 놀란다. 한옥 내에 로마 시대 법정이나 상업거래소 건물에 사용된 바실리카 양식이 조화를 이뤄 오묘하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목화로 만든 천…소창이 다시 주목받는다

강화도는 1970년대까지 ‘부자 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려 인삼의 성지로 인삼 판매가 성행한 데다가 특히 당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국 최대의 ‘소창’ 생산지대였다.

소창은 목화에서 실을 뽑아 씨실과 날실을 엮어 만든 천연 면직물로 아이들의 기저귀나 손수건, 여성 생리대용으로 애용돼 왔다.

그러나 화려한 시절은 얼마가지 못했다. 나일론과 같은 인조직물이 대중화 되고, 대구와 수원 등지에서 섬유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 100여 개 달하는 소창 생산 공장은 대부분 사라져 현재 10곳 만이 남았다.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소창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근 불거진 유해물질 생리대 논란 이후 친환경 생리대와 기저귀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소창체험관이라는 곳도 생겼다. 평화직물이었던 염색공장터를 개보수한 곳으로 옛 직물 산업이 번성했던 강화도의 모습과 함께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일본 가옥과도 같아 보이는 소창체험관에선 소창을 비롯한 시대별 직물 산업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곳의 재미는 인기는 소창 손수건 만들기, 다도 체험이다.

손수건 만들기는 운영 시간 언제든 개별적으로 찾아도 체험할 수 있다.

이곳의 뒤뜰을 산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창의 재료인 목화가 몽글몽글 피어있고 장독대와 우물 등 직물산업이 번성했던 당시를 재현한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여행…교동도

북한과 맞닿아 있는 섬이 있다. 바로 강화읍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민통선 지역에 속한 교동도다.

교동도는 오랫동안 여행지로서 큰 관심을 받지못한 섬이다. 연백평야가 망원경 없이 보일 만큼 북한과 가까운 탓에 일반인의 출입이 까다로웠으며,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되기 전엔 강화도에서도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본의 아니게 외지와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덕에 교동도는 강화도 내에서도 시간이 멈춘 듯 소박한 옛 모습을 간직하게 됐다.

교동도 곳곳을 둘러보면 가장 눈에 띄는 상징물이 ‘제비’다. 교동의 관광 안내소도 ‘교동 제비집’일 정도다.

제비는 망향의 슬픔을 안고 있는 실향민들의 애환과 희망의 상징이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피난한 실향민들이 교동도에 정착한다. 실향민들은 남북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제비를 부러워하며 바다 건너 고향을 그리워한다.

교동의 명물은 ‘대룡시장’이다. 실향민들이 황해도 연백 시장을 그대로 재현한 곳으로 화려하거나 크지 않고 소박하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옛 간판과 ‘선팅’이 벗겨진 유리문, 촌스러운 상점의 이름들은 이곳 시장의 정감가는 분위기를 대변한다.

대룡시장 뒷편으로 가면 옛 시절을 겪지 못했지만, 경험은 해볼 수 있는 공간인 ‘교동 사진관’이 있다. 70~80년대 학생들이 입었던 교복에 교련복이며 세월의 때가 묻은 실내화와 고무신을 착용하고 흑백 기념사진을 찍어보자.

추억의 장소인 만큼 당시 군것질거리도 판매한다.

(인천=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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