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편의점 카드결제 마비… 자영업자들 “주말 장사 망쳐” 분통

홍석호 기자 , 이건혁 기자

입력 2018-11-26 03:00 수정 2018-11-26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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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세상의 역풍]KT아현지사 화재로 ‘일상 대란’

그래픽=김성훈·서장원 기자
#1. 대학생 전모 씨(27)는 24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친구들과 모여 커피를 마신 뒤 계산을 하려고 했지만 카페의 카드결제 단말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일행 4명 중 아무도 현금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전 씨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인출하려고 했지만 카페에서 가장 가까운 ATM마저 작동하지 않았다. 전 씨는 다시 신촌역 인근 ATM까지 찾아갔지만 현금을 찾으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2.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신모 씨(28·여)는 24일 오후 마포구에서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지갑도 없이 휴대전화만 갖고 나왔던 그는 마포역에 도착한 뒤에야 휴대전화가 먹통이 됐고, 삼성페이 교통카드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역무원에게 사정해 개찰구를 빠져나온 신 씨는 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공중전화를 찾았지만 역에 설치된 공중전화마저 ‘먹통’이었다.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에서 화재가 발생한 뒤 서울 중서부 일대에선 통신과 상거래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유·무선 전화, 인터넷, 인터넷TV(IPTV)가 먹통이 됐고 KT 통신망을 이용하는 카드결제 단말기가 작동하지 않아 KT 망만 이용하는 중소형 카드 가맹점들의 피해가 컸다.


○ 패닉에 빠진 시민들

서울 도심에서 휴대전화와 카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결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는 시민이 많았다.

25일 오후 수시 논술고사가 치러진 이화여대도 혼란스러웠다. 조카를 데려다주기 위해 위례신도시에서 온 최성환 씨(47)는 “오는 길에 서대문구에 접어들자 KT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먹통이 됐다”며 “시험에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이날 이화여대 캠퍼스 내 식당, 영화관, 도서관 좌석 배치 기기 등은 모두 오류를 일으켰다.

대학병원도 접수가 더뎌진 탓에 창구가 더욱 붐볐다. 신촌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긴급환자를 제외한 환자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조회와 접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통신망 오류로 조회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24일 화재 발생 이후부터 저녁까지 환자 접수에 30∼40분씩 더 걸렸다”고 설명했다. 의사들 간에 통화가 원활하지 않아 ‘○○○ 선생님을 찾습니다’ 같은 방송이 하루 종일 병원에 울렸다고 한다.

KT 아현지사 2층에 있는 ‘기가 오피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들은 통신망 두절로 서버에 접속하지 못하면서 내부 망과 홈페이지 등이 먹통이 됐고, 서버에 저장된 일부 데이터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KT가 기업 서버를 관할 지사로 옮겨와 대신 관리해주는 것이다. 기가 오피스 내 각종 기기들은 시커먼 연기에 그을렸다. KT 관계자는 “모든 데이터는 곧 복구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울고 싶은데 뺨 맞은 자영업자들

자영업자들은 최악의 주말을 보냈다. 홍익대 입구, 신촌, 이태원 등의 상점들에는 ‘통신장애로 카드 결제가 어렵다’란 안내 문구가 붙었고, 일부 가게는 입구에서부터 종업원이 ‘현금과 계좌이체만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일부 고객은 얼굴을 찡그리며 발길을 돌렸다.

24일 오후 8시경 홍익대 인근의 한 음식점에는 테이블 23곳 가운데 2곳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점장 이모 씨(33)는 가게를 가리키며 “평소면 매장이 가득 차는 시간”이라며 “계좌이체가 어렵다는 고객은 모두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현금이 없다는 고객들에게 가게에서 가까운 편의점의 ATM을 소개해 줬지만 해당 ATM도 작동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ATM 179대가 중단됐고, 3개 은행 64개 전용회선에 문제가 생겼다. 신촌의 한 일식집 직원 유모 씨(35)는 “평소 하루에 50건가량 배달하는데 전화가 먹통이라 배달 전화가 한 건도 안 들어왔다”고 하소연했다.

주말에 주로 손님이 몰리는 마포구 아현동 가구단지도 직격탄을 맞았다. 고급 가구를 취급하는 한 가구점은 제주도 별장에 넣을 고급 가구를 사러 온 ‘큰손’과 월 매출 20%에 이르는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서까지 썼지만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바람에 무산됐다. 인근 가구점 사장 정모 씨(58)도 “세 팀과 계약을 했다가 결제가 무산돼 못 팔았다. 합치면 월 매출의 10% 규모였다”고 토로했다. 이어 “가구는 손님의 70%가 주말에 오고, 가격대가 있는 만큼 대부분 카드로 결제하는데 이번 주말은 완전히 공쳤다”며 울상을 지었다.

홍석호 will@donga.com·이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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