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3차 시리즈 드라이브… “규제혁신은 뒷전 밀리나”

문병기 기자

입력 2018-11-21 03:00 수정 2018-11-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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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이번엔 “9대 생활적폐 청산”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요양병원들이 소위 ‘먹튀(먹고 튀다)’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 집현실에서 열린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이른바 ‘사무장 병원’들에 대한 부당이득 환수율이 4%대에 머물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사무장, 병원장 등 연대책임을 물어서 병원이 문을 닫더라도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먹튀’, ‘갑질’, ‘연대책임’ 등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표현을 동원하며 생활적폐 청산에 대대적인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이날 회의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재형 감사원장 등 주요 장차관과 기관장 36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집권 3년 차를 앞두고 다시 한번 적폐청산에 나서면서 경제·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혁신에는 소홀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문 대통령, “부처가 현장을 모르고 있다”며 질타

문 대통령은 이날 9대 생활적폐에 대한 부처별 성과와 향후 대책을 보고받았다. △학사·유치원 비리 △공공기관 채용 비리 △공공분야 불공정 갑질 △보조금 부정 수급 △지역 토착 비리 △편법·반칙 탈세 △요양병원 비리 △재건축·재개발 비리 △안전분야 부패 등이다.

문 대통령은 회의 시작부터 “가르쳐도 고치지 않으면 형별로 다스려야 한다”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구절을 인용하며 부처별 대책의 미진한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요양병원 비리 대책에 대해선 “국민 혈세가 허술한 감시로 날아가고 있다”며 “단순히 비리 몇 건 적발하겠다는 대책은 안 된다. 본질적인 대책을 보고하라”고 했다.

학사 비리 대책에는 “사교육비 절감, 진보적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수능 비중 축소, 내신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비율 확대에 대해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 저변엔 학사 비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태를 언급하며 대선 공약인 대입 제도 개선 지연이 교육부 등의 학사 비리 감독 부실 때문이라고 질책한 것. 문 대통령은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국민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이라며 “학교와 내신에 대한 국민 신뢰 없이는 공교육 정상화 등 제도 개선이 불가능하므로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보고한 재개발·재건축 비리에 대해선 아예 “현장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지금 대책은 근본적으로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고 질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공직사회 ‘갑질 문화’에 대한 특단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참석자들에게 “윗물부터 맑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자신부터 돌아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저부터 책임감을 갖고 노력할 테니 여기 계신 여러분이 사명감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 적폐청산 재등장에 혁신 뒷전 밀리나

문 대통령이 7개월 만에 적폐청산 컨트롤타워인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하며 강도 높은 질책을 쏟아낸 것은 취임 후 추진해온 개혁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봤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부처에서 국회 입법 등을 핑계 대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혁신성장이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적폐청산 시즌 3를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진보진영에서 “개혁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적폐청산 드라이브로 지지층을 달래며 국정 동력을 다잡으려는 행보라는 것이다. 여권 일각에선 벌써부터 또 다른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따른 피로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부패 척결 등 사회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국면 전환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뜯어고치고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 식의 적폐청산이 얼마나 공감대를 얻을지 모르겠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규제 완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 가는 방향으로 국정이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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