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 사료에 맞춤 인테리어까지… 이젠 ‘펫미’ 시대

박창규 채널A 기자

입력 2018-10-13 03:00 수정 2018-10-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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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열풍 어디까지 왔나

이마트의 반려동물 전문점 몰리스펫샵은 경기 하남시 스타필드하남에 반려견과 견주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인 몰리스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 제공
서울 성동구에 사는 정지민 씨(42·여)는 자타공인 ‘캠핑 마니아’다. 차량 뒷좌석과 트렁크에 항상 캠핑용품을 실어놓고는 시간이 날 때마다 산과 들로 떠난다. 1인 가구여서 다른 가족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다. 지인들은 “혼자 다니면 외롭지 않느냐”며 걱정하지만 정 씨는 “문제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반려견 ‘시로’가 든든한 동반자로 그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5년째 함께 살고 있는 정 씨와 시로는 거의 모든 일상을 공유한다. 정 씨의 승용차 조수석은 항상 시로의 차지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도 시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 씨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사진의 과반수는 모두 시로의 일상이다. 정 씨가 팔로잉(구독)하는 계정의 대다수도 그와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반려견주들이다.

국내에서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정 씨처럼 반려동물을 ‘삶의 동반자’로 여기는 이들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대하는 ‘펫팸족(펫과 패밀리의 합성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펫미족’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 반려동물은 또 다른 나… ‘펫미족’ 등장

펫미족은 ‘반려동물(pet)을 자기 자신(me)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반려동물 산업을 일컫는 ‘펫코노미(펫과 이코노미의 합성어)’ 등이 펫미족의 등장을 촉발시켰다.

집 안에서 반려견이 손쉽게 드나들 수 있게 설계한 소형 문. 밸류체인 제공
국내 반려동물 사육가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 전체 가구의 17.4%이던 반려동물 사육 가구는 지난해 28.1%로 증가했다. 10가구 중 3가구가 집에서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덩달아 반려동물 시장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연관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8994억 원에서 2018년 2조6510억 원으로 3년 새 39.6%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광고회사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올해 초 보고서 ‘2018, 반려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소비 트렌드’에서 펫미족의 등장을 불러온 3가지 키워드로 ‘펫러닝(펫과 러닝의 합성어)’, ‘펫부심(펫과 자부심의 합성어)’, ‘펫셔리(펫과 럭셔리의 합성어)’를 꼽았다. 펫러닝은 반려동물을 위한 예절인 ‘펫티켓(펫+에티켓)’을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의 행동양식을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반려동물에게 좀 더 나은 생활여건을 제공하려는 게 목적이다.

펫부심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서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개나 고양이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려 자랑하고 싶은 이들이 늘고 있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반려동물도 있다. 흰색 포메라니안 종인 ‘달리’는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35만 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뮤직비디오 출연, 인천국제공항 홍보대사 활동에 이어 ‘달려라 달리!’라는 책도 나왔다.


○ 반려동물용 고가 제품도 적극 구매

펫미족에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반려동물을 위해 고가의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를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펫셔리라는 말이 보여주듯 과거 자신을 위해 값비싼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았던 것처럼 반려동물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한다. 시장에선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 제품 및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먹거리가 대표적이다. KGC인삼공사가 선보인 반려동물 건강식 ‘지니펫’은 반려동물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홍삼 성분이 함유돼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 유한양행은 반려동물 사료 ‘웰니스’를 내놓으면서 제품에 함유된 유산균 함량을 겉포장지에 표기했다. 김민수 유한양행 차장은 “저급한 육류 부산물 등을 배제하고 유산균 같은 좋은 성분을 첨가하는 등 반려동물의 건강에 초점을 맞춰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원F&B는 지난달 추석을 앞두고 반려동물을 위한 사료와 장난감을 담은 명절선물세트를 출시하기도 했다.

집, 차량 등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에 반려동물을 배려한 디자인을 적용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출입구에 반려견이 드나들 수 있는 소형 문을 설치하거나 반려견용 샤워기, 털이 막히지 않는 배관 등을 구비해두는 게 대표적이다.

주택디자인에 반려견을 배려한 설계를 반영하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인테리어 전문기업 밸류체인은 반려견주택연구소와 손잡고 최근 반려인을 위한 주택 브랜드 ‘위드펫’을 선보였다. 밸류체인은 반려견과 함께 사는 20, 30대 여성을 주 타깃으로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인근 등에서 원룸을 분양할 예정이다. 박준영 반려견주택연구소장은 “사람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반려동물을 위해 실내환경을 동물 친화적으로 개선하면 반려동물은 더 오래 건강하고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볼보자동차의 ‘도그 하네스’는 승용차에 탑승한 반려견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역할을 한다. 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
볼보자동차는 차량에 동승한 반려견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렁크 공간에 설치하는 ‘도그 게이트’를 내놓았다. 도그 게이트를 설치하면 차량이 급제동하거나 충돌할 때에도 반려견이 앞좌석으로 쏠리거나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아 안전하다는 것이 볼보 측의 설명이다.


○ 반려동물에 예의를 가르쳐야

반려동물 관련 시장과 산업이 급성장하는데 반해 ‘펫티켓’의 안착 속도는 더딘 편이다. 지난해 한 연예인의 반려견에게 물린 이웃 주민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뒤부터는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갈등도 더욱 심해지는 모양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병원 응급실을 찾은 신체 손상 환자 1000명 중 개 물림 환자 수는 2011년 5.7명에서 지난해 8.2명으로 6년 새 43.9% 증가했다. 정부는 반려인들이 외출할 때 맹견에게 반드시 입마개와 목줄을 착용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반려인들과 동물보호단체는 이를 “동물 학대”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펫티켓 교육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령 반려인은 외출할 때 산책줄을 반드시 사용하고 배변봉투를 챙기며 반려동물에게 매너교육을 시켜야 한다. 비반려인은 타인의 반려견을 함부로 만지거나 빤히 바라보지 말고, 큰소리로 반려견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박희명 건국대 교수는 “반려인은 반려견의 사회화를 위해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비반려인도 사람 중심의 사고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창규 채널A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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