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라식수술-光통신… 올해 노벨상 기초과학 경제효과 수백조원

동아일보

입력 2018-10-05 03:00 수정 2018-10-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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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면역질환치료제 ‘휴미라’, 노벨상 ‘파지전시’ 기술 덕에 개발
지난해만 매출액 20조원 기록
고출력 극초단파 레이저 ‘펄스’, 라식수술-정밀 가공 길 열어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고출력 극초단파 레이저 펄스’는 현재 라식 수술에 흔히 쓰이고 있다. 동아일보DB
올해 노벨상을 수상한 기초과학 분야 연구 성과는 의료부터 소재, 에너지, 반도체, 통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 분야에 실용화돼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부터 특정 목적을 염두에 두고 연구해 얻은 기술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물들은 인류가 이전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선물들을 안겨줬다. 경제 효과만 수백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단일 처방약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휴미라’(물질명 아달 리무맙)는 올해 화학상을 받은 ‘파지 전시’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류머티스관절염 치료제다. 애브비
○신약 개발의 새 패러다임을 열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류머티스관절염에 흔히 활용되고 있는 애브비의 ‘휴미라’(물질명 아달리무맙)는 지난해 184억2700만 달러(약 20조638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단일 처방약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휴미라는 1985년 개발돼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파지 전시’ 기술에서 비롯됐다. 파지 전시는 바이러스의 일종인 박테리오파지의 표면에 특정 항원(병원체)이 생기도록 만드는 기술로, 특정 항원에 특이적으로 결합해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인간 항체를 쉽게 생산할 수 있다. 조유희 차의과학대 교수는 “기존에 쥐에게 항원을 주입해 얻었던 단일클론항체는 인체에서 거부 반응이 있었지만 파지 전시로 만든 항체는 이런 부작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파지 전시는 골리무맙, 다라투무맙 등 다양한 신약 개발로 이어졌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면역관문억제제의 일종인 BMS·오노약품공업의 ‘옵디보’(물질명 니볼루맙)는 3세대 면역항암제로 최근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49억4800만 달러.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1990년대 면역세포인 T세포의 특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개발됐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PD-1’ ‘CTLA-1’ 등 단백질(면역관문)을 억제해 면역기능을 되살린다. 신의철 KAIST 교수는 “면역관문억제제로 항암제의 패러다임이 면역항암제를 중심으로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면역관문억제제인 ‘키트루다’(물질명 펨브롤리주맙)도 2014년 시판 이후 연평균 19%씩 매출이 오르고 있다. 지난해 한 해 동안만 38억900만 달러(약 4조2661억 원)를 기록했다. 2024년에는 126억9000만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치료 효과는 높고 정상세포를 공격하거나 내성이 생기는 등 부작용은 기존 항암제에 비해 적다. 특히 여러 종류의 암을 치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옵디보와 키트루다의 경우 처음에는 악성흑색종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는데 이후 비소세포 폐암에서도 효능이 입증됐다. 현재는 위암과 두경부암, 요로상피암, 림프종 등으로 치료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GBI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면역항암제의 시장 규모는 2022년 9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라식 수술부터 ‘효소 공장’까지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개발한 ‘고출력 극초단파 레이저 펄스’(펨토 레이저)는 매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시력을 되찾아 주는 라식 수술에 활용되고 있다. 펨토 레이저를 개발해 55년 만의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된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는 2일 노벨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개발한 기술이 사람들의 눈을 고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펨토 레이저는 수십 펨토초(fs·1fs는 1000조분의 1초) 수준의 짧은 시간 단위로 매우 가늘게 레이저 빛을 쏠 수 있는 기술이다. 기존 레이저는 빛이 가해지는 시간은 길고 출력은 낮아 대상 물질에 열이나 충격파에 의한 손상을 가했다. 반면 펨토 레이저는 살아 있는 세포에까지 정밀하게 미세 구멍을 뚫을 수 있어 수술뿐만 아니라 정밀기계 가공과 생체분자 시각화 등에 쓰인다.

올해 물리학상 공동 수상으로 이어진 ‘광학 집게’는 원자나 분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를 빛으로 밀거나 당기고 붙잡을 수 있는 기술로, 최근에는 통신 기술에까지 응용됐다. 송석호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팀은 광통신 주파수 대역과 관계없이 작동하는 광다이오드 소자를 개발해 올해 9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기존의 광다이오드 소자는 광자(光子)가 가진 고유 진동수와 공명하는 주파수 대역에서만 작동하는 한계가 있었다. 송 교수는 “광학 집게 덕분에 광자를 잡고 내부에 에너지를 가하는 방식으로 광자의 진동수를 조절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화학상을 받은 유도 진화 기술은 원하는 기능을 가진 촉매와 분자를 마음껏 만들 수 있는 ‘효소 공장’을 가능하게 해줬다. 수백 년 이상 걸리는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화학적인 조작으로 단 몇 시간, 며칠 내로 가속시켜 준다. 덕분에 친환경 바이오 연료, 의약품, 페인트, 반도체 등 여러 산업 재료를 쉽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


○기초과학 연구 성과, 특허로도 이어져

이처럼 노벨상은 기초과학 연구 성과에 수여되지만 상당수는 산업과 연계돼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한국연구재단이 2008∼2017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78명이 발표한 논문 1만2973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논문이 직접 인용된 특허나 이 특허가 다시 인용된 특허는 총 5만7142건으로 확인됐다. 발표된 논문보다 4.4배 많은 특허가 나온 셈이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녹색형광단백질(GFP)의 경우 226편의 논문이 7717건의 특허 출원으로 이어졌다.
 
송경은 kyungeun@donga.com·김진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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