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신규택지 재건마을 ‘폭풍전야’…주민들, 침묵 속 사태 관망

뉴스1

입력 2018-09-29 09:59 수정 2018-09-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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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개포동 재건마을© News1
재건마을에 부착된 무허가건출물 폐쇄 안내문© News1

“글쎄요. 아직은 조용합니다. 주민들이랑 서울시·강남구청과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언가 답변이 오겠죠.”

지난 28일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재건마을은 의외로 조용했다. 이곳은 서울시가 1만호 주택을 짓겠다고 밝힌 서울의 11개 택지지구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는 한 60대 주민은 신규택지 조성 발표 이후 뚜렷한 변화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와 이주문제 협의 중 택지지구 선정 발표에 당혹

재건마을은 1970년대 후반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강제 이주하면서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이다. 세월이 흘러 세상을 떠난 분들과 화재로 그나마 있던 거주공간마저 잃은 주민들이 하나둘씩 흩어지면서 현재는 약 60가구 정도만 남아 있는 강남의 대표적인 판자촌이다.

최근 주목을 받은 이유는 서울시가 이곳에 신혼희망타운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앞서 서울시는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으로 신규택지를 공개하며 송파구 옛 성동구치소 부지와 개포동 판자촌 재건마을을 지목했다. 이중 재건마을은 시유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토지보상 과정에 걸림돌이 적어 사업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재건마을에는 신혼희망타운 340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재건마을 주민들은 이번 발표가 금시초문이라며 조금은 당황스럽다고 했다. 서울시와 이주 문제를 논의 중이었는데 이같은 계획이 공개돼서다.

대중의 관심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들은 이주문제가 매듭되기 전에 자신들의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꺼려했다. 대체로 무허가 판자촌이 개발되면 예전부터 이곳을 무단점령해 살았던 주민들은 입주권 혹은 분양권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협상과 결렬이 반복되다가 결국은 강제철거로 결론난다. 하지만 재건마을 분위기는 조금 다른 듯 했다. 일단 주민들은 서울시의 정확한 입장을 먼저 듣고 추후 주민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겠다고 밝혔다.

실제 마을을 둘러보니 빠른 이주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여전히 거주 환경은 열악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주택은 만원 버스의 승객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가구는 조립식 건물로 들어서 그나마 여건은 개선됐다는 게 주민들 설명이다. 냉난방뿐 아니라 화재에 취약한 것은 당연했다. 한 주민의 “사람과 쥐가 한집에 살고 있다”는 하소연에서 재건마을의 취약한 주거여건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 70대 주민은 “서울시에서도 주민들 의견을 듣고 답변을 보내겠다는 공문을 보내왔다”며 “이제 서울시 생각을 듣기 위해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건마을에서 민원이 들어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중간회신을 보냈다”고 전했다.

◇6년째 지지부진…수억원대 토지변상금 ‘걸림돌’

문제는 서울시와 주민 협의가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재건마을 이주문제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서울시는 2012년 재건마을을 공영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사업 진척은 없다. 주민들은 이번 발표로 서울시와의 합의가 빠르게 진행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한 주민은 “대표 1인이 아닌 거주민 모두의 의견을 종합해 서울시와 논의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표했다.

다만 해결해야할 숙제는 여전하다. 강남구청이 부과한 토지변상금은 걸림돌 중에 하나다. 구청은 주민들이 시유지를 불법점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토지변상금을 부과했고 수년간 누적된 변상금액이 수억원에 달한다. 주민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강제이주를 당해 어쩔 수 없이 이곳까지 쫓겨왔는데 벌금까지 내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고 했다.

한 주민은 “주민들 모두가 자진해서 재건마을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며 “과거에 강제이주 당했는데 이제 와서 불법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지에선 추후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입지는 양호하다는 평가가 대체적이었다. 지하철 3호선 매봉역과는 걸어서 5분 거리다. 마을 바로 앞으로 양재천도 흐르고 있다. 개포동에 재건축이 추진되는 것도 긍정적이다. 다만 재건축을 통해 개포통 전체가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신혼희망타운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렸다.

매봉역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재건마을 개발은 수년째 나오는 이야기라 주변 주민들은 무덤덤한 편”이라면서 “신혼희망타운 분양가가 저렴하다는 사실에 대해선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젊은층이 들어온다면 동네가 활기를 띨 것 같다”면서도 “‘강남’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지역에 민간분양이 아니라는 점은 반대요소인 것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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