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풍족한 물 지하수로 만들어 보관… 싱크홀-가뭄 막는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기자
입력 2018-09-17 03:00 수정 2018-09-17 03:46
‘지하수 인공함양’ 신기술 각광
대량의 물, 땅에 스며들게하거나 인위적으로 투입해 보존하는 방식
장마철 집중호우 지역에 효과… 지반 강해져 지진 대비 장점도
지난주 대전 대덕컨벤션센터(DCC)엔 세계 지하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계 유일의 지하수 연구학회인 국제수리지질학회 행사가 한국에서 열린 것이다. 전 세계 지질 연구자들의 관심이 최근 ‘지하수 인공함양’ 기술에 쏠리고 있다. 10일 행사장에서 만난 포르투갈 국적의 안토니우 샴벨 국제수리지질학회장은 “학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분야를 알려 달라”는 질문에 거리낌 없이 지하수 인공함양 기술을 꼽았다.
함양(涵養)이란 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현상을 뜻한다. 인공함양 기술은 풍수기(물이 풍부한 시기)에 대량의 물을 땅속에 넣어 인공적으로 지하수로 만드는 작업이다. 큰 구덩이를 만들어 물을 채운 다음 천천히 땅속으로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침투분지 방식, 흘러내리는 하천을 작은 댐으로 막아 물이 지하로 스며들 시간을 버는 사방댐 방식 등이 자주 쓰인다. 인공함양은 사전에 땅속 지층의 형태를 알고 있어야 관련 시설을 만들 수 있으므로 고도의 지질조사 기술이 필요하다. 땅속에서 지하수가 천천히 흐르는 지층을 ‘대수층’이라고 하는데, 그 위쪽으로 물의 유입을 막는 점토층 등의 지층이 있다면 침투분지 방식이나 사방댐 방식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럴 경우는 직접 물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수십m 깊이의 관정(管井)을 뚫어야 한다. 지하수의 흐름을 땅속에서 막아 땅속 수량을 확보하는 ‘지하댐’ 건설도 인공함양 기법에 속한다.
지하수 형태로 물을 보관하면 증발이 잘 되지 않고 대수층의 정수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어 결국 수자원이 풍부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에선 수도당국도 지하수 함양 기술을 이용한다. 각 가정에 공급하고 남은 수돗물을 지하수로 보관했다가 다시 꺼내 공급한다. 이 밖에 포르투갈, 호주 등도 인공함양 기술이 발전했다.
인공함양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피터 딜런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교수는 “서호주 퍼스 지역에선 매년 풍수기 때 1400만 t의 물을 인공으로 함양하고 있다”면서 “인공함양 기술이 없으면 세계적으로는 100억 t에 달하는 수자원이 부족해진다”고 말했다.
인공함양 기술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반 안전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수량이 부족해지면 대수층이 힘을 잃고 지반을 받치는 힘도 줄어든다. 이 경우 지진이나 갑작스러운 홍수에 대비하기 어렵게 된다. 급격한 도심화도 문제다. 과거엔 비가 내릴 때 많은 양이 흙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바뀌었지만 최근엔 콘크리트로 덮여 있어 빗물이 빠른 속도로 하천으로 내려간다. 대수층에 지하수가 공급되지 않으면 점차 지반이 약해져 지표면에 갑자기 큰 구멍이 뚫리는 ‘싱크홀’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공함양 기술은 장마철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 국내 현실에도 적합해 다양한 지역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 지역이 인공함양 기술로 유명한 곳으로 꼽힌다. 제주도의 토양은 딱딱한 화산암으로 비가 내려도 금방 바다로 흘러가 지하수가 생성되기 어렵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2010년부터 제주도의 한천(漢川) 인근 지역에 인공함양을 위한 저류지를 건설하고, 50m 깊이까지 관정을 뚫어 대수층에 연간 240만 t의 물을 함양하고 있다. 이 밖에 농림축산식품부 등도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전국 각 지역에 지하수 인공함양 시설을 늘려가고 있다.
인공함양 전문가인 김용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하수생태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인공함양기술은 단순히 물 자원을 보관하는 것뿐 아니라, 지하수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라고 말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기자 enhanced@donga.com
대량의 물, 땅에 스며들게하거나 인위적으로 투입해 보존하는 방식
장마철 집중호우 지역에 효과… 지반 강해져 지진 대비 장점도
멕시코 소노라주 ‘산 루이스 리오 콜로라도’ 지역. 인근 폐수 처리장에서 나온 820만 ㎥의 물을 인공함양하는 시설이다. 멕시코 측은 이 인공함양 기술로 사막지역을 습지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프링거 제공
“현재 세계 지질 분야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는 ‘지하수 인공함양’입니다.”지난주 대전 대덕컨벤션센터(DCC)엔 세계 지하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계 유일의 지하수 연구학회인 국제수리지질학회 행사가 한국에서 열린 것이다. 전 세계 지질 연구자들의 관심이 최근 ‘지하수 인공함양’ 기술에 쏠리고 있다. 10일 행사장에서 만난 포르투갈 국적의 안토니우 샴벨 국제수리지질학회장은 “학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분야를 알려 달라”는 질문에 거리낌 없이 지하수 인공함양 기술을 꼽았다.
함양(涵養)이란 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현상을 뜻한다. 인공함양 기술은 풍수기(물이 풍부한 시기)에 대량의 물을 땅속에 넣어 인공적으로 지하수로 만드는 작업이다. 큰 구덩이를 만들어 물을 채운 다음 천천히 땅속으로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침투분지 방식, 흘러내리는 하천을 작은 댐으로 막아 물이 지하로 스며들 시간을 버는 사방댐 방식 등이 자주 쓰인다. 인공함양은 사전에 땅속 지층의 형태를 알고 있어야 관련 시설을 만들 수 있으므로 고도의 지질조사 기술이 필요하다. 땅속에서 지하수가 천천히 흐르는 지층을 ‘대수층’이라고 하는데, 그 위쪽으로 물의 유입을 막는 점토층 등의 지층이 있다면 침투분지 방식이나 사방댐 방식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럴 경우는 직접 물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수십m 깊이의 관정(管井)을 뚫어야 한다. 지하수의 흐름을 땅속에서 막아 땅속 수량을 확보하는 ‘지하댐’ 건설도 인공함양 기법에 속한다.
국내 연구진이 제주 현지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해 제공한 지하수 인공함양 장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
이런 지하수 인공함양 기술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이전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꾸준히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지구온난화로 이상기온 현상이 심화되면서 관련 기술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대량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고, 폭염으로 갑작스러운 가뭄이 이어지는 등 지표수 위주로 수자원을 관리했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하수 형태로 물을 보관하면 증발이 잘 되지 않고 대수층의 정수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어 결국 수자원이 풍부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에선 수도당국도 지하수 함양 기술을 이용한다. 각 가정에 공급하고 남은 수돗물을 지하수로 보관했다가 다시 꺼내 공급한다. 이 밖에 포르투갈, 호주 등도 인공함양 기술이 발전했다.
인공함양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피터 딜런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교수는 “서호주 퍼스 지역에선 매년 풍수기 때 1400만 t의 물을 인공으로 함양하고 있다”면서 “인공함양 기술이 없으면 세계적으로는 100억 t에 달하는 수자원이 부족해진다”고 말했다.
인공함양 기술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반 안전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수량이 부족해지면 대수층이 힘을 잃고 지반을 받치는 힘도 줄어든다. 이 경우 지진이나 갑작스러운 홍수에 대비하기 어렵게 된다. 급격한 도심화도 문제다. 과거엔 비가 내릴 때 많은 양이 흙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바뀌었지만 최근엔 콘크리트로 덮여 있어 빗물이 빠른 속도로 하천으로 내려간다. 대수층에 지하수가 공급되지 않으면 점차 지반이 약해져 지표면에 갑자기 큰 구멍이 뚫리는 ‘싱크홀’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공함양 기술은 장마철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 국내 현실에도 적합해 다양한 지역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 지역이 인공함양 기술로 유명한 곳으로 꼽힌다. 제주도의 토양은 딱딱한 화산암으로 비가 내려도 금방 바다로 흘러가 지하수가 생성되기 어렵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2010년부터 제주도의 한천(漢川) 인근 지역에 인공함양을 위한 저류지를 건설하고, 50m 깊이까지 관정을 뚫어 대수층에 연간 240만 t의 물을 함양하고 있다. 이 밖에 농림축산식품부 등도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전국 각 지역에 지하수 인공함양 시설을 늘려가고 있다.
인공함양 전문가인 김용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하수생태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인공함양기술은 단순히 물 자원을 보관하는 것뿐 아니라, 지하수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라고 말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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