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만든 ‘가족 이야기’라 더 각별합니다”

박선희 기자

입력 2018-08-14 03:00 수정 2018-08-14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윌리 로먼 역 전무송 씨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연습실에 모인 배우 전무송의 가족.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무송, 예술감독 전현아(딸), 비프 역을 맡은 배우 전진우(아들), 연출가 김진만(사위), 아이 목소리로 출연하는 김태윤(외손자).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윌리 인(in)!”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연습실. 연출가의 사인이 떨어지자 묵직한 가방을 든 배우 전무송 씨(77·윌리 로먼 역)가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 린다(박순천)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서 밀러(1915∼2005) 원작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실제 공연처럼 이어서 연습하는 중이었다. 실적, 경기 걱정에 자식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찬 예순 셋의 세일즈맨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뷔 55년 차인 전 씨는 수차례 윌리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이번은 더 각별하다고 했다. 원로 연극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늘푸른연극제’의 개막작인 데다, 그의 실제 가족이 총출동해 함께 극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위 김진만 씨가 연출가, 딸 전현아 씨가 예술감독이고 아들 비프 역은 실제 아들인 배우 전진우 씨가 맡았다. 그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실제 ‘가족극’으로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개막작을 맡은 소회는….

“연극인은 연극할 때 제일 행복한 법이다. 소위 ‘원로’라 불리는 배우들이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 후배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수락했다. 지금 어렵고 힘들어도 ‘언젠가 저 선배들처럼 되겠지’ 하고 느끼게끔 하고 싶다.”

―윌리 역은 7번째다. 얼마나 각별한 작품인가.

“창작극도 좋지만 옛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을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극단 성좌의 권오일 연출가(1931∼2008)가 1984년에 처음 윌리 로먼 역을 맡겼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해 ‘이 작품 한 번만 더 하자’고 하셨는데 그러지 못해 섭섭했다. 후배들이 만들어준 자리인 만큼 올해 10주기를 맞은 선생님을 기리며 이 작품을 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번이 내 마지막 ‘세일즈맨의 죽음’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40대에 연기한 윌리와 70대인 지금의 윌리는 어떻게 다른가.

“첫 무대 때 대본을 읽어보니 내 아버지와 윌리가 똑같더라. 자식에 대한 그 대단한 바람, 자부심…. 당시에는 아버지에 대해 상상하며 연기했다. 지금은 연기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 아들(비프 역)도 마흔이 다 돼 연극한다고 저러고 있고.(웃음) 이 역을 많이 해봐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알면 표현은 그냥 나온다. 아서 밀러가 원했던 윌리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관객들이 어떤 걸 느끼길 기대하나.

“세상 아버지들 다 똑같은 마음 아닌가. 자식도 마찬가지다. 부모에 대한 바람, 갈등, 실망…. 다들 엉킨 것들이 있다. 들여다보면 결국 욕심 때문이다. 모든 윌리 같은 아버지, 비프 같은 아들들이 이 작품을 보고 당신들이 원하는 진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아들, 딸, 사위가 합심해 무대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소감은….

“실은 아내에게 ‘우리 가문을 일으켜 줘’라고 고백했다. 몸에 뭐가 올라오는 것 같아 사랑한단 말은 차마 못 하고…. 지금 보니 이게 가문이지 뭔가. 이런 걸 원했던 것 같다.”

―공연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가길 바라나.

“생색내기 지원뿐인데 그것만 바라보는 처지도 불쌍하다. 예술가가 마음껏 창조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다. 자기 목적을 위해 비열하게 예술가들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념을 앞서 가는 게 예술이다.”

17∼26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3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