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석탄 제재 구멍 10개월 손놓다… 정부 “입항금지 검토” 뒷북

신나리 기자 , 박강수 인턴기자 성균관대 철학과 4학년

입력 2018-08-11 03:00 수정 2018-08-11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북한산 석탄 위장 반입]66억규모 3만5000t 적발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정부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 수단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해 10월 의심정보가 입수된 후 10개월 만에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관련 업체의 일탈 행위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석탄 원산지 신고서가 위조돼도 세관당국이 이를 검증하지 못했고, 수사가 미진하다며 검찰이 재차 보완수사를 지휘하면서 사건을 질질 끄는 등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대북제재 공조에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금수품목 지정 전부터 러시아산으로 둔갑

관세청 조사 결과를 보면 북한산 석탄과 선철의 러시아 환적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산 석탄에 대한 전면 수출 금지를 규정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71호가 채택되기 넉 달 전이다. 당국에 적발된 A 씨(45·여) 등 국내 수입업자 3명과 법인 3곳은 금수품목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이미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속여 반입했다.

관세청이 세 차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선하증권, 상업송장, 휴대전화 채팅 및 녹취파일을 분석한 결과 밀반입에는 총 14척의 배가 연루되어 있다. 석탄이 처음 적재된 북한 송림, 원산, 청진, 대안항에서 러시아로 향한 배가 7척, 러시아에서 배를 바꿔 국내 당진, 포항, 인천, 동해 등으로 들어온 배가 7척이다. 피의자들은 한국에서 통관 절차를 거칠 때 위조된 러시아산 원산지 증명서를 들이댔다. 러시아산 무연성형탄(일명 조개탄)에 대한 수입검사가 강화되자 북한산 성형탄을 들여올 때는 원산지 신고가 필요 없는 세미코크스로 품목을 위장하기도 했다.

이들이 북한산 물품을 러시아를 거쳐 제3국으로 수출하는 중개무역을 주선하면서 수수료조로 석탄 일부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러시아산 원료탄을 구입해 북한으로 수출한 뒤 현금 대신 북한산 선철이라는 현물을 받아 대금 지급에 대한 단속을 피하기도 했다. 다만 관세청과 외교부는 이 과정에서 신용장을 발급한 은행들은 불법 행위를 모르고 내줬다는 점에서 수사 대상도, 제재 위반 보고 대상도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 수사 의지 없이 한계 드러낸 정부

조사가 지지부진했던 관세청은 최근 중요 피의자가 원산지 증명서 조작 등을 실토하면서 북한산 석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피의자의 진술이 없었다면 비슷한 유엔 안보리 위반 사례가 발생해도 못 찾아내거나 이번처럼 수사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관세청이 내놓은 수사 장기화 사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중요 피의자들의 혐의 부인 등으로 인한 지연을 시작으로 △방대한 압수자료 분석 △성분 분석만으로는 원산지 확인 △검찰의 공소 유지를 위한 정밀 수사 △러시아와의 국제공조 어려움 등이다. 범죄를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도, 해당 위험 선박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조치 공조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대부분의 다른 수사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서 또 다른 변명거리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수사를 맡은 대구세관이 첩보 입수 넉 달 뒤인 올해 2월 처음 검찰에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 의견을 건의했다가 보완수사 지휘를 받고 다시 5개월이나 보완수사에 매달린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10개월 동안 잠자고 있던 수사가 국내외 언론의 문제 제기로 1개월도 안 돼 결과가 나온 셈인데, 결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제대로 조사할 의지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해 10월부터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의심 선박들에 대한 선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국내 입출항을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석탄 문제 해결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 당국은 “안보리 결의에 따라 전 세계에서 선박을 붙잡고 있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정부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언론이 호도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해왔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산 석탄이 유통되는 과정 전반을 점검하고, 의심정보를 입수하고도 국내 유통을 여러 차례 막지 못한 경위부터 철저히 규명해야 한국이 대북제재망을 허물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박강수 인턴기자 성균관대 철학과 4학년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