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단축 역풍… 10시도 안돼 막차가 끊겼다

강성휘 기자 , 최영권 인턴기자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4학년

입력 2018-07-30 03:00 수정 2018-07-3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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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버스대란 우려가 현실로
수입 준 기사들 떠나고 충원은 못해… 전국 94개 노선 감축운행-2개 폐지
한달 버틴 지역들도 “조정 불가피”


“오후 8시 45분 이후에는 버스 없습니다” 이달부터 노선버스 운전사의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막차 시간을 당기거나 운행 횟수를 줄이는 노선이 늘고 있다. 20일 강원 속초시 시외버스터미널 매표소에 강릉행 시외버스 막차 시간이 오후 10시에서 8시 45분(실선)으로 1시간 15분 당겨졌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속초=최영권 인턴기자

한 달 전 계획한 모처럼의 휴가가 삐걱거린 건 시외버스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이었다.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부산에서 강원도로 휴가를 온 대학생 김모 씨(23)는 20일 오전 11시경부터 강원 양양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시간가량 강릉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하루 37회였던 강릉행 시외버스 운행 횟수가 이달 들어 21회로 줄었다는 사실을 안 건 터미널에 도착해서였다. 매표소에서는 버스 운전사 근로시간 단축 때문이라고 했다. 터미널에서 시간을 허비한 김 씨는 결국 강릉 유명 맛집에서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이달부터 버스 운전사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운행을 줄이거나 노선을 폐지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해당 지역 주민뿐 아니라 휴가차 현지를 찾은 여행객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29일 동아일보가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지 않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국토교통부에 문의한 결과 이달 들어 전국 96개 시내버스 노선이 폐지되거나 운행이 조정된 것으로 집계됐다. 노선 폐지는 충북 제천시와 전남 목포시가 각각 1건이고 나머지 지역은 운행 횟수가 줄거나 첫차 및 막차 시간이 바뀐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노선버스 중 시내버스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시외버스, 농어촌버스 등 다른 노선버스를 포함하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운행을 줄인 노선은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충남 아산시, 전남 목포시 등 시내버스 운행 감축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진 지역에서는 이미 이로 인한 불편이 일상이 됐다.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윤모 씨(27·여)는 20일 오후 9시 20분 고속철도(KTX) 천안아산역에 내리자마자 책이 가득 든 가방을 메고 버스 승강장을 향해 내달렸다. 991번 막차를 타기 위해서였지만 이미 버스는 출발한 뒤였다. 윤 씨가 타는 991번은 오후 10시 40분이던 막차 시간이 이달 들어 오후 9시 15분으로 당겨졌다. 매일 집이 있는 아산에서 서울 노량진 학원가를 오가는 윤 씨는 “이달 들어 막차를 놓쳐 택시를 타는 날이 많아 부모님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 버스업계 “근무표 못짤 판” 정부 “준공영제 확대 검토” ▼

11개 노선이 감축되고 1개 노선이 폐지된 목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21일 오후 목포역 앞에서 만난 황회성 씨(69)는 “전북 익산에서 오는 길이다. 산정동 집에 가려고 평소 10번을 자주 타는데, 최근엔 진짜 잘 안 온다”고 불평했다. 인근 전남 무안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김모 씨(78)는 “3km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나는 다리가 아파 못 걷는다. 노인들은 움직이는 게 불편해 잠깐 나와서 볼일 볼 때도 노선버스가 필요한데 버스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관련 업계는 하루 운행 종료 후 버스 운전사 연속휴식시간을 최소 8시간 보장해주도록 하는 법안이 올해 2월 시행된 가운데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쳐 노선버스 운행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근무시간 감축으로 월급이 줄자 퇴직금 감소를 우려한 기존 운전사들이 서둘러 준공영제 지역인 서울 및 광역시(울산 제외)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도 인력난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충남 천안시 M운수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 전까지는 버틸 만했지만 7월부터 운전사들이 빠져나가면서 운행을 줄이게 됐다”고 했다. 강원여객 관계자는 “정부에서 요구하는 휴식시간과 근로시간을 맞추려면 인력이 더 필요한데 버스 운전사 지원자가 없다. 기존 운전사들도 준공영제 지역으로 넘어가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목포시 태원여객 측은 “운전사 한 명당 하루 16시간을 넘지 않도록 근무시간을 조정했다. 앞으로 인력이 충원되면 원래대로 운영이 정상화되겠지만 지금으로 봐선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노선버스 운행을 줄이지 않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운행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전남 나주시 담당자는 “우리 시는 모든 노선이 적자다. 국비지원액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노선 개편과 감차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난 한 시외버스 운전사는 “아직 정부의 근본대책이 없어 한두 달 지나면 근무표가 아예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운전사들을 노선에 투입하기 어려워 근무표 자체를 짤 수 없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버스 준공영제 확대 등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최대한 빨리 전문가와 업계 등의 의견을 수렴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아산=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양양·목포=최영권 인턴기자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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