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인간의 선택은 합리적이지 않다”

동아일보

입력 2018-07-25 03:00 수정 2018-07-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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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카너먼의 ‘프로스펙트 이론’


대부분의 중·고등학교가 지난주 여름방학에 들어갔습니다. 방학을 맞이하는 학생들은 홀가분하고 즐거워야겠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받아 든 학기말 성적에 속상해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학생들이 실제 느끼는 성적에 대한 압박감은 무척 심한 것 같습니다.

최근 서울, 부산, 광주 등 여기저기서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이 터졌습니다. 내신 경쟁 과열이 부른 일탈입니다. 치열한 내신 경쟁은 학생부 위주의 전형 비율이 높아진 대학 입시와 상관성이 있습니다. 수능으로 갈 수 있는 정시의 문은 좁고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의 비중이 높다 보니 내신 성적에 사활을 걸다시피 합니다.

현장에 있다 보니 성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흥미로운 점을 많이 봅니다. 어떤 학생은 80점을 받고 좋아하지만 어떤 학생은 90점을 받고도 속상해합니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성적과 실력을 가진 학생도 자신의 성적에 불만입니다.

대니얼 카너먼(1934∼·사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원래 심리학자였던 카너먼은 에이머스 트버스키(1937∼1996)와 함께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며 유명해졌습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하는 주류 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을 넘어 행동 경제학을 창시한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프로스펙트 이론을 통해 인간은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으며 감정을 가진 ‘휴먼’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카너먼은 의사결정의 세 가지 행태로 준거 의존성, 민감도 체감성, 손실 회피성을 제시합니다.

준거 의존성이란 의사결정이 효용의 절대적인 크기보다는 준거점으로부터의 변화에 근거하여 수행된다는 것입니다. 수학 성적 90점을 받은 학생 A는 불만인 반면 80점을 받은 학생 B는 만족하는 이유는 준거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95점에서 90점으로 떨어진 A의 준거점은 95점이고, 75점에서 80점으로 오른 B의 준거점은 75점입니다. 그러니 준거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겁니다.

민감도 체감성이란 이익이나 손실의 변화 폭이 작을 때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이익이나 손실의 변화 폭이 커질 경우 가치의 민감도가 감소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50점에서 55점으로 상승한 학생이 90점에서 97점으로 상승한 학생보다 더 많이 상승했다고 느낀다는 것이죠.

손실 회피 성향에 따르면 90점에서 95점으로 상승한 학생이 느끼는 만족감보다는 90점에서 85점으로 하락한 학생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더 큽니다. 카너먼의 측정에 따르면 크기가 같은 이익과 손실 중에서 손실이 약 2∼2.5배 크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1만 원을 주웠을 때의 만족감보다는 1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의 고통의 크기가 더욱 큰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 인간의 선택은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각자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주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과 비교할수록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쟁하고 비교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고 더 나아질 미래를 믿고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도 고충이 있겠지만, 특정 제도 아래서 매번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학생들의 압박감을 덜어 주고, 그들의 행복을 더 크게 할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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