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 vs 분향소… 보름째 ‘살벌한 동거’

최지선 기자

입력 2018-07-18 03:00 수정 2018-07-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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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노조-보수단체 덕수궁앞 대치

대한문 앞 두 분향소… 긴장감 ‘팽팽’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출신 김주중 씨 분향소와 연평해전·천안함 용사 분향소가 나란히 세워지면서 양측의 대치가 길어지고 있다. 4일 쌍용차 노조와 보수단체가 대한문 앞에서 각각 집회를 벌이자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관들이 양측 사이에 서 있는 모습.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3명은 이쪽, 나머지는 저쪽을 보고 서!”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지시를 받은 경찰관 6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일렬로 세워둔 노란 바리케이드 앞에 3명씩 나눠 양쪽으로 몸을 돌린 채 선 후 삼엄하게 경계했다.

이 양쪽에는 상반된 풍경이 펼쳐졌다. 한쪽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아래 연평해전·천안함 용사를 기리는 분향소가 차려져 있다. 안에는 천안함 용사의 위패 46개가 빼곡히 설치됐다. 나이가 지긋한 참가자들이 밤을 새우며 보초를 서고 있다.

반대편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였던 김주중 씨의 분향소다. 청와대에 보낼 메시지를 남기는 ‘노란봉투 우체통’이 설치됐다. 승려, 수녀 등 종교인과 노조원들이 ‘상주’를 자처하며 24시간 자리를 지킨다.

경찰이 이들 사이에 ‘38선’을 그으면서 ‘살벌한 동거’가 시작된 것은 약 보름 전부터다. 지난달 27일 김주중 씨가 사망한 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3일 대한문에 분향소를 세우자 태극기국민운동본부(국본)는 “대한문은 우리의 성지(聖地)”라며 연평해전·천안함 용사를 기리는 분향소를 세웠다. 양측 사이에 폭행과 욕설이 오가자 경찰이 가운데에 바리케이드를 세웠다. 양측은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날마다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오후 6시가 되면 보수단체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크게 틀어 선전전 시작을 알린다. 16일 열린 집회에는 30여 명이 참가해 한 손엔 태극기, 다른 손엔 성조기를 들고 위아래로 흔들며 애국가 1절을 불렀다.

연설에 나선 한 참가자는 “나도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지금 나라 꼴을 봐라. 다 북한 좋으라고 데모하는 것”이라고 쌍용차 노조를 향해 외쳤다. “빨갱이들은 분신해야 한다” “너희 땅이 아니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을 붙잡고 “Poor President Park is in jail(불쌍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다)”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같은 시간 쌍용차 노조 분향소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팔을 힘차게 흔들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불렀다. 쌍용차 노조는 매일 이 노래를 시작으로 문화제를 열고 있다. 상대방을 향해 “함께 살자”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퇴근길에 이 장면을 본 유은영 씨(27·여)는 “날도 더운데 매일 퇴근길에 큰 소리를 듣는 게 기분 좋지는 않다”며 “집회는 자유지만 정도를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조 측은 김주중 씨의 49재인 8월 14일까지 분향소를 철거하지 않을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할 문제를 내세우며 나서지 않고 있어 양측의 대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중구가 도로점용 허가권자다. 중구에 문의하라”고 했지만 중구는 “대한문 앞이 문화재청 소유의 ‘사도(私道)’라 관리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문화재청은 “대한문 내부만 문화재청 관리 구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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