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화기처럼… 한국안방 두드리는 ‘글로벌 미디어 공룡’

신동진 기자 , 송혜미 인턴기자

입력 2018-07-18 03:00 수정 2018-07-1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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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온라인 동영상서비스 ‘넷플릭스’, 한국에 콘텐츠 제작투자 대공세

넷플릭스의 ‘미스터션샤인’에서 고국에 돌아온 조선계 미군 장교 이병헌. tvN 제공
‘적인가 아군인가.’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한 장면. 구한말 의병인 주인공(김태리)은 동지인줄 알았던 미군 저격수(이병헌)의 속내를 궁금해하며 이렇게 되뇐다. 외풍에 속절없이 흔들렸던 조선의 개화기는 지금의 미디어 시장과 똑 닮았다. 기차, 호텔 등 외국에서 건너온 신식 문물이 백성의 마음을 훔쳤듯 글로벌 미디어 공룡은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한국 안방을 노크 중이다. 이 드라마 역시 제작비(400억여 원) 대부분을 미국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와 공급계약을 통해 회수했다.

190여 개국, 1억2500만 가입자에 월 매출 1조 원이 넘는 넷플릭스가 국내 미디어산업 열차에 올라탔다. 미국에서 케이블TV 가입자 수를 추월하며 ‘코드커팅(유료방송 해지)’ 주역으로 떠오른 회사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TV방송시대는 2030년까지만 지속될 것”이라며 올드 미디어에 선전포고를 했다. 넷플릭스는 개화기인 국내 미디어 시장의 포식자일까, 조력자일까.


○ ‘콘텐츠 공세’ 넷플릭스에 플랫폼업계 전전긍긍

넷플릭스는 2016년 1월 한국어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기대와 달리 토종 업체들에 밀려 한동안 고전했다.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게 주된 평가였다. 한국어 콘텐츠는 부족하고 결합상품으로 체감가격을 낮춘 기존 유료방송에 비해 흡인력이 크지 않았다. 2년간 국내 가입자 수는 30만 명 안팎에 머물렀다.

상황이 반전된 건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에 직접 나서면서부터다. 당초 국내 미디어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을 직접 공략하기보다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지만 오산이었다. 넷플릭스는 tvN 등 국내 방송사와 콘텐츠 제휴를 맺은 데 이어 ‘옥자’ ‘범인은 바로 너’ ‘킹덤’ 등 콘텐츠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 케이블과만 협업했던 플랫폼 전략도 최근 LG유플러스 등 통신사까지 확대해 적극적으로 변했다.

넷플릭스의 반전 공세에 기성 플랫폼들은 당황하고 있다. 플랫폼 업체들이 영향력을 앞세워 콘텐츠를 값싸게 구매하던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올해 전 세계 콘텐츠 투자비용은 총 80억 달러(약 9조 원). 미스터션샤인의 경우 넷플릭스가 회당 최소 12억 원씩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파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가 5억 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2배가 넘는 액수다.
지상파로 구성된 방송협회 등은 5월 넷플릭스의 영향력 확대가 미디어 산업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이 넷플릭스의 ‘생산 하청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다. 국내 IPTV가 넷플릭스와 제휴협상을 벌이면서 수수료를 90% 지불할 계획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콘텐츠제작업체(CP)들은 수수료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편다. 국내 CP들이 유료방송 플랫폼과 VOD의 경우 6 대 4 혹은 5 대 5 수익 배분을 하는데 비하면 과도하다는 것.

하지만 넷플릭스라는 ‘메기’의 등장이 미디어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안정적인 해외 매출을 보장하고 막대한 투자 및 구매자 역할로 국내 콘텐츠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넷플릭스를 타고 국제무대에서 스타성을 인정받은 국내 연출자, 작가, 배우들의 몸값이 뛸 수도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 우리 플랫폼과 유통 채널들은 적극적인 투자로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콘텐츠를 싸게 공급받아 수익을 취하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 칸막이로 쪼개진 미디어정책… 역차별 우려도

문제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미디어 공습에 대처할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조직은 OTT처럼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트렌드와 맞지 않게 콘텐츠와 플랫폼, 사전과 사후 규제로 파편화돼 정책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와 달리 한국은 방송통신정책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나눠 맡고 있다.

현행법상 OTT 사업자는 전기통신사업자 중 부가통신사업자로 과기정통부 소관이지만 이용자 보호 같은 사후규제는 방통위 소관이다. OTT사업자는 당국에 신고만 하면 돼 별다른 사전 규제를 받지 않는다. 반면 경쟁관계인 유료방송은 방송법이나 IPTV법의 규제를 강하게 받는 점에서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도 지난해 방통위 추진과제를 설명하며 “방송통신융합은 심화됐는데 거꾸로 우리는 분화돼 간다.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정책적인 접근보다 사업자들의 각성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우리 OTT나 방송 플랫폼은 비슷한 요금제에 비슷한 콘텐츠 제공으로 차별점이 없다. 파편화로 단독으로 투자할 여력이 적다면 협업을 해서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송혜미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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