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관세폭탄 때리고… 패권도전 응징하고… 무역전쟁 총사령관

구자룡 기자 , 이진구 기자

입력 2018-07-14 03:00 수정 2018-07-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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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무역질서 흔드는 미국의 ‘對中 강경 3인방’

“웃음을 띠고 우리를 대하고 있으나 절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적이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탐욕에 눈먼 거대한 용(龍)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지구의 종말이 시작된다.”(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중국산 제품에는 징벌적인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USTR가 6일 340억 달러(약 38조 원) 규모의 818개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언론이 콕 찍어 ‘무역전쟁 도발의 원흉’이라고 지목한 3명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신념들이다.

부동산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가(트럼프), 경제학과 교수(나바로), 통상 전문 변호사(라이트하이저) 등 배경은 다르지만 그들은 각 분야에서 중국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제 미 정부에서 핵심 지위를 차지한 이들은 자신들이 골수에 맺힐 만큼 강하고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생각들을 현실에 옮기고 있다. 미국이 대중(對中) 무역전쟁을 벌이는 등 국제 자유무역 질서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데는 ‘대중 강경 3인방’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 ‘제2의 플라자 협정’ 꿈꾸는 라이트하이저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 후에 국무장관으로 발탁된 제임스 베이커와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5개국 재무장관이 모여 미국 달러의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에 대한 환율 인상(평가 절하)을 추진하는 ‘플라자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 약발은 미국의 기대 이상으로 2년 만에 달러는 50% 이상 절하돼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했다. 달러화 약세는 1987년 2월 22일 5개국이 다시 모여 ‘루브르 협약’으로 하락을 멈추게 하자고 약속할 때까지 계속됐다.

일본은 엔화 가치 상승으로 뉴욕의 고층 빌딩을 사들이는 등 호황을 누렸지만 독배를 마신 것이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잃어버린 10년(1991∼2000년)’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위협적인 2위 경제국 일본을 ‘한 방’에 보냈다.

당시 라이트하이저는 USTR 부대표로 플라자 협정의 주역 중 한 명이다. 33년 전 추격자 일본을 굴복시켰던 그에게 이제는 상대가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경제 2위국의 도전을 뿌리치는 역할을 맡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환율 한 가지 수단으로도 큰 성과를 달성했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3월 미 재무부의 평가에서도 중국이 ‘환율 조작국’에 지정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 ‘혐의’가 뚜렷하지 않은 데다 대중 적자 누적의 요인도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6일 340억 달러 고율 관세와는 별개로 10일 추가로 2000억 달러 규모의 관세 폭탄을 던지면서 라이트하이저는 “관세 부과 대상은 중국의 산업 정책과 강제적인 기술 이전 관행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제품들”이라고 했다. 환율만으로 일본 독일을 공격하던 때와는 상황이 다른 고민이 담겨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USTR 부대표를 마친 후 대형 로펌 ‘스캐든’의 파트너 변호사로 미국 기업들을 위한 징벌관세 부과 업무를 맡아 30여 년간 일해 왔다. 주요 대상이 중국 철강으로 이번 대중국 관세 폭탄의 대표 품목이다.


○ ‘군복을 입고 벙커에서 무역전쟁 지휘’ 말까지 듣는 나바로

“중국 공산당식 변칙적인 국가자본주의는 세계의 자유 시장과 자유무역 원칙을 산산조각으로 파괴하고 있다. 정부의 후원을 받는 ‘국가 대표 기업’은 중상주의와 보호주의를 결합한 정책을 무기 삼아 휘두르면서 전 세계 산업계의 일자리를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백악관에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일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하고 초대 위원장에 임명한 ‘초강경 반중 학자’ 나바로 어바인대 교수의 기본 생각이다.

그는 중국이 휘두르는 ‘일자리 파괴의 무기’로 △불법 수출 보조금 △지식재산권의 무분별한 위조 △느슨한 환경 법규 △업계에 만연한 노예 노동력 사용 △미국 기업에 대한 높은 중국 진입 장벽 등을 들고 “가장 뻔뻔한 것으로 환율 조작도 있다”고 했다(‘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2011년. 원제 ‘Death by China’).

“중국이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으로 정정당당하게 미국의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중국의 8가지 불공정 무역관행으로 창출되는 경쟁 우위가 50%가 넘는다”고 반박한다. 숫자를 동원한 논지 전개는 경제학자답지만 8가지 관행 표현에서는 뿌리 깊은 대중 반감과 ‘전사의 결기’가 느껴진다. △미국의 심장을 겨누는 교묘하고 불법적인 수출 보조금 △약삭빠른 환율 조작 △지식재산 위조, 침해, 절도 △원가 절감을 위한 기업의 환경 파괴 정부 묵인 △국제 표준에 훨씬 못 미치는 근로자 안전 보건 기준 △핵심 원자재 수출 제한으로 관련 산업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 강화 △약탈적인 덤핑으로 경쟁국 밀어내기 △‘보호주의 만리장성’으로 중국 시장 진입 장벽 구축 등이다.

나바로는 “세계사에서 1500년 이후 중국 같은 신흥 세력이 미국 같은 기존 강대국과 대치한 것은 15차례이고 이 중 11차례에서 전쟁이 발생했다. 확률이 70%를 웃돈다”(‘웅크린 호랑이’)며 미중 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신흥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이 전쟁 등 충돌하는 것)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경제적 이해를 넘어 패권 도전국 중국에 대한 견제 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포인트는 뒤에 있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30년 전쟁 후유증으로 쇠잔의 길을 걸었다”며 양국이 함정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을 권고한다.


○ “미국이 중국의 봉이라니 기가 찰 노릇” 외치는 트럼프

트럼프는 대중 무역전쟁에서 현장 지휘관이다. 트럼프의 말과 정책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지만 대중 피해의식과 보복 의지는 사업가로서 오랜 기간 쌓인 것이다.

“중국은 환율 조작으로 우리 주머니에서 매년 1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빼내가고 있다. 내가 중국을 우리의 적이라고 규정한 뒤 온갖 비난을 받았으나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

트럼프는 중국을 △작정하고 미국을 파탄 내려고 덤비는 사람들 △일자리를 앗아가는 사람들 △기술을 훔쳐 가는 사람들 △기축통화 달러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람들인데 ‘적’ 말고 뭐라고 부르냐고 반문한다.

트럼프는 “우리는 중국 일본 멕시코 같은 나라로부터 일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미국 소비자들이 만든 세계 최고의 시장을 그냥 내주고 있다”며 “미국의 노동력이 최고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단지 그들이 경쟁하도록 해주기만 하면 된다”(‘불구가 된 미국’)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일자리를 잃은 것은 중국 등의 불공정 행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대응해 내놓은 것이 고율 관세 폭탄이다.


○ 안팎에서 부는 ‘보호주의 3인방’에 대한 역풍

이들의 노골적인 미국 우선 및 보호주의 논리는 중국과 서방 각국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했던 자유무역 질서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관세 폭탄에 대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통령들이 도입한 가장 비합리적인 일”이라며 “멍청하고 미친 짓이다. 트럼프는 무솔리니처럼 독재자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국내로 가져오는 방법으로 ‘온 쇼어링(본국으로 제조 시설을 옮기는 것)’을 들면서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지만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가 상하이(上海)에 연간 50만 대 규모의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 일부 기업의 탈미(脫美)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구자룡 bonhong@donga.com·이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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