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약 먹었는데 암 걸렸다?… 전문가들 “발암확률 매우 낮아”

김상훈기자

입력 2018-07-14 03:00 수정 2018-07-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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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온라인 공간서 잦아들지 않는 ‘발사르탄 괴담’

“혈압 떨어뜨리려고 약을 먹었는데 암에 걸리게 됐다.” “이 약을 먹다가 이미 암에 걸려 사망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 약을 먹었는데도 암에 안 걸렸다면 천운으로 여겨야 한다.”

중국 제약사 제지앙화하이가 제조한 원료의약품 ‘발사르탄’ 성분의 고혈압 약 115개 품목을 보건 당국이 판매 금지한 이후 온라인 공간에 이 같은 말들이 떠돌고 있다. 해당 의약품을 복용하던 환자들이 다른 약으로 대체하면서 사태가 다소 진정된 것 같지만 ‘발암 공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해당 원료의약품에 ‘발암물질’이 들어 있었다는 일부 주장도 이런 공포 심리를 부추겼다. 여기에 중국으로부터 의약품 원료 수입을 중단하자는 과격한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대부분이 뚜렷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잘못된 표현이나 오해가 빚어낸 공포라고 진단했다. 대한고혈압학회 학술이사인 이해영 서울대 순환기내과 교수는 “이번 상황은 제조공정과 설비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례적인 사건이다. 발암 논란으로 커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 “문제가 되는 약들을 복용했다고 해서 암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 정말 암을 유발하나

이번 사태는 중국 제약사 제지앙화하이가 만든 고혈압 원료의약품 발사르탄에 불순물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발사르탄은 고혈압 치료제의 여러 성분 중 하나다. 2000년대 초,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이 성분을 개발하면서 ‘디오반’이란 이름으로 출시했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기간이 끝나면 다른 제약사들도 이 성분을 쓰는 복제약(제네릭)을 만들 수 있다. 국내 제약사들은 2012년 발사르탄의 특허가 만료되자 복제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로 중국에서 원료인 발사르탄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제지앙화하이는 2012년부터 발사르탄 제조를 시작했다. 문제는 2015년 10월에 제조공정과 설비를 일부 변경하면서 발생했다. 이때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란 불순물이 들어간 것이다. 이 NDMA는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틀린 표현이다. NDMA는 ‘인간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 혹은 ‘인간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추정되는 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는 사람에게 암을 유발하거나 암과 관련이 있는 물질을 크게 4개 그룹으로 분류한다. 암을 유발하는 게 확실한 발암물질은 1그룹이다. 발암이 추정되거나 가능성이 있는 것은 2그룹이다. 발암성이 아직 분류돼 있지 않은 것은 3그룹, 발암성이 없는 것은 4그룹이다.

2그룹은 발암성이 추정되는 2A와 발암 가능성이 있는 2B로 다시 나눈다. NDMA는 2A에 속한다. 2A그룹은 동물실험에서 암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사람에서는 그런 사례가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NDMA가 암을 유발했다는 증거가 아직까지 없다는 뜻이다. 이해영 교수는 “NDMA의 유해성이 과장돼 있다. 이 물질은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생기기도 하며 미량으로는 인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제지앙화하이가 제조공정과 설비를 바꾼 2015년 10월 이후부터 NDMA가 함유됐다면 이 약을 복용한 환자는 최대 3년 치 NDMA에 노출된 셈이다. 이 정도면 발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 논문을 분석한 결과 5, 6년을 복용해도 암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식약처는 NDMA의 함유량을 비롯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사하고 있다.


○ 대형병원은 차분, 동네병원엔 문의 폭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판매가 중지된 의약품을 복용해 온 환자는 약 18만 명으로, 전체 고혈압 환자의 3% 정도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7일 이후 병원마다 한때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난 12일 현재는 잠잠해지는 모양새다. 서울의 A대학병원 관계자는 “첫날에만 문의가 좀 왔을 뿐이다. 조사해 보니 우리 병원에서는 해당 제품을 처방하지 않고 오리지널 의약품을 처방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공지한 후로는 문의 전화가 아주 간간이 오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다만 동네 의원 상황은 좀 다르다. 대학병원과 달리 동네 의원에서는 대체로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값싼 복제약을 처방하는 경향이 많다. 이 때문에 동네 의원들에는 아직까지도 환자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성동구의 가정의학과 의사 B 씨는 “환자들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복제약을 처방했는데, 그게 되레 화근이 됐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대체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제약사와 의사 전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3년 동안 발사르탄 성분의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는 50대 후반의 강모 씨는 “이래 가지고 겁나서 약을 먹을 수 있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발사르탄 성분에 대한 두려움이 큰 환자라면 다른 성분의 약으로 바꿀 것을 권유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교수는 “발사르탄 성분의 약은 570여 개에 이른다. 이번에 문제가 된 약 이외의 것은 사용해도 무방하며, 그래도 찜찜하다면 의사와 상의해 다른 약으로 대체해도 된다”고 말했다.


○ 중국 원료 불신-보건 당국 비난 확산

이번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중국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중국산 원료의약품을 수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는 모양새다.

현재 국내 제약사들은 세계 81개국으로부터 원료의약품을 수입하고 있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약사들은 총 18억888만 달러의 원료의약품을 수입했다. 이 중 30.5%인 5억5226만 달러어치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2위인 일본(2억8582만 달러)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그만큼 중국 의존도가 높다.

이뿐만 아니다. 의약외품 수입 물량도 전체 2억879만 달러 중 26.6%(5545만 달러)로 중국의 비중이 가장 높다. 한약재 수입도 마찬가지다. 전체 1억2617만 달러의 42.1%(5310만 달러)로 압도적으로 중국의 비중이 높다.

갈수록 원료의약품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중국산 원료의약품의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중국산 원료의약품이 다른 국가보다 30%에서 많게는 60%까지 싸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발사르탄 원료의약품의 경우 국내산은 kg당 20만 원 선이지만 중국산은 10만 원 선 안팎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중국산 원료의약품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의약품의 경우 원산지에 대한 정보조차 제품에 표시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소비자들도 많다. 하지만 보건 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식약처의 한 관계자는 “중국산 원료의약품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례적인 이번 사태를 중국산 원료의약품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조사하더라도 특정국이 아닌 모든 수입 원료의약품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보건 당국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국 제지앙화하이가 제조한 발사르탄에 NDMA가 포함됐다는 사실을 이달 5일 유럽의약품청(EMA)이 공개하자 이틀 후인 7일 식약처는 문제의 발사르탄이 들어 있다며 219개 약품에 대해 판매 중지를 단행했다. 하지만 현장 재조사 결과 이 중 104개 약품은 문제의 발사르탄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처는 하루 만에 부랴부랴 이들 104개 제품에 대해 판매 중지를 해제했다. 이처럼 식약처가 오락가락하는 동안 소비자의 혼란은 더욱 커졌다.

식약처는 NDMA의 함량이 어느 정도인지,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에 대한 정보도 아직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현재 조사 중이며 조사가 끝나는 대로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 의협 “성분명 처방 금지를”… 약사회 “싸구려약 처방이 문제” ▼

발암 괴담에 의사-약사 서로 “네 탓” 공방

중국산 발사르탄 파동으로 고혈압 환자들이 패닉에 빠지고 ‘발암 괴담’까지 확산되고 있는데도 의사와 약사 단체들이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보다는 네 탓 공방에만 몰두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나아가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될 때부터 논란을 벌였던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를 둘러싼 갈등이 재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의약분업은 처방은 의사가 하고, 조제는 약사가 하도록 한 제도이다.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할 대표적 전문가 단체들이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는 지적이 적잖다. 성분명 처방이란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특정 의약품명을 쓰는 게 아니라 약의 성분명을 쓰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고혈압 약을 처방할 때 ‘발사르탄’이란 성분으로 처방하는 식이다. 대체조제는 의사가 처방한 약과 약효가 동등한 다른 약을, 약사가 의사와 환자에게 알리고 처방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포문을 열었다. 의협은 “국민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성분명 처방과 약사의 임의적 대체 조제를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9일 발표했다. 성분명 처방을 통해 약사들이 복제약들을 임의로 골라 조제하는 게 이번 파동의 한 원인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주장한 셈이다. 의협은 환자들에게 복용하고 있는 고혈압 약은 반드시 의사에게 확인받으라고 권하고 있다.

대한약사회(약사회)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약사회는 “이번 사건은 리베이트에 만취된 의사들의 싸구려 약 처방 행태로 인해 문제가 커졌다”며 “의사의 처방대로 조제한 약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마라”고 맞섰다. 약사회는 “(의협이) 잘못된 제도로 인해 의사 처방대로 조제할 수밖에 없는 약사들에게 문제의 원인을 뒤집어씌우고 있다”고도 했다.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몇 년간 복용하던 약을 당장 바꿔야 하는 환자는 안중에도 없고 서로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나”라며 두 단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글이 많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자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환자들은 전문가들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들은 네 탓 공방이나 하고 있으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며 혀를 찼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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