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 제약사, ‘발암물질 고혈압약’ 정부에 늑장보고 의혹

조건희 기자 , 한성희 인턴기자 한양대 경영학부 4학년

입력 2018-07-13 08:51 수정 2018-07-1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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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약사가 혈압약 원료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사실을 지난달 유럽 제약사에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제약사도 이 같은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정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카멜리아 에나치오유 유럽의약품청(EMA) 공보관은 11일 동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지난달 중국 제지앙화하이가 혈압약의 원료의약품 발사르탄에 2A군(인체 발암가능) 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섞인 사실을 유럽의 제약사들에 알렸고, 제약사들이 이를 곧장 보고하면서 조사에 착수했다”라고 밝혔다. EMA는 이에 따라 이달 5일 해당 의약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EMA가 회수를 시작한 뒤에야 문제를 파악했다. 제지앙화하이로부터 발사르탄을 공급받은 국내 제약사 42곳 중 불순물 검출 사실을 보고한 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알고도 일부러 보고하지 않았는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제지앙화하이의 발사르탄을 수입해온 S제약 측은 “해당 문제를 미리 인지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제약사가 의약품의 안전성과 관련된 사안을 식약처에 보고하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문제를 인지한 분기가 지나고 1개월 내에만 보고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어, 절차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암물질이 섞인 혈압약 원료는 2012년부터 국내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EMA에 따르면 제지앙화하이는 “2012년 제조 공정을 바꾼 뒤 발사르탄에 발암물질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내 고혈압 환자들이 NDMA가 섞인 혈압약을 6년 넘게 복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가 된 의약품을 복용한 국내 환자는 17만8536명이다.

NDMA는 훈제 요리 등 음식물을 통해서도 섭취할 수 있다. 다만 혈압약처럼 장기간 매일 복용하는 의약품에는 적은 양의 NDMA가 섞여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식약처가 지난해 12월 번역 발간한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의 가이드라인에는 “NDMA는 발암성이 매우 강해 복용 허용치를 일반적인 불순물보다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다. 일반적인 불순물의 복용 허용치는 하루 1.5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한성희 인턴기자 한양대 경영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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