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자국기업 호주머니 터는 후진형 경제수석은 그만

동정민 파리 특파원

입력 2018-07-13 03:00 수정 2018-07-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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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윤종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2015년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파리에 보낸 건 최경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대부분 외교부 출신으로 채워지는 다른 대사 자리와 달리 OECD 대사는 특정 부처의 몫이 아니었다. 당시 실세였던 최 장관은 기재부 출신의 윤 수석을 밀어 넣었다. 기재부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한 자리 늘린 셈이다. ‘실력자’ 윤 수석이라면 다른 부처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거라 여겼다.

외교부는 OECD 대사 발표 전날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각별한 외교부 인사를 밀어 넣어 교체를 시도했지만 결국 윤 수석을 밀어내지는 못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정작 윤 수석은 그 자리를 반기지 않았다. 장차관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그로서는 국제기구 대사 자리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를 지내고 있던 터라 또 국제기구로 ‘겉돌’ 경우 국내 복귀가 쉽지 않다는 우려도 컸을 수 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복이 화가 되기도, 화가 복이 되기도 함)라고 했던가.

박근혜 정권 때 한 자리를 차지했던 이들은 곧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정권이 바뀌자 윤 수석은 이번에 금의환향했다.

윤 수석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국제기구 경력. 그는 OECD 대사 부임 후 ‘행복 전도사’가 됐다. 재정, 예산 등 거시 경제를 중시했던 엘리트 관료는 여성의 삶, 자살률, 대기 질, 교육 등 국민 행복에 새롭게 눈떴다. 윤 수석이 최소한 일부 경제수석들이 자행했던 부끄러운 후진적 행태를 재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 이유도 그가 글로벌 경제 수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통령경제수석은 큰 안목에서 국가 경제를 설계하기보다 눈앞의 정권 성과에 집착해 권력을 앞세워 기업들에 갑질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시도마다 대기업들에 할당해 센터를 지었다. 스타트업 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그 방법으로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아닌 대기업의 호주머니를 털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이 주로 한 일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앞세워 기업들을 압박하는 거였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동안 손영 삼성전자 전략 담당 최고책임자를 서너 차례 독대했다. 삼성전자 오너도 아닌 그 분야 책임자를 만나라고 여러 차례 조언한 이는 엘리제궁의 한국계 디지털경제수석 세드리크 오(한국명 오영택)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결국 파리에 삼성의 인공지능(AI)센터 유치를 얻어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수시로 전 세계 글로벌 기업인을 베르사유궁에 불러 “프랑스를 택하라”고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선진국 정상들이 이처럼 전 세계 기업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 자국으로 가져오려 하는 동안 한국 정상들은 손쉽게 우리 기업 호주머니를 털어 정권 생색내기에 써 왔다. 그런 나쁜 관행의 제일선에는 늘 경제수석이 있었다.

윤 수석이 근무한 OECD 본부는 파리에 있다.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선진국 정상들의 치열한 일자리 및 투자 유치 경쟁을 최전선에서 지켜본 그가 대통령경제수석의 다른 수준을 보여주리라 기대한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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