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공사 4곳 2兆규모 사업 중단… 中 돈줄 조이자 제주 휘청

강성휘 기자 , 박재명 기자

입력 2018-07-09 03:00 수정 2018-07-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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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경제 중국發 먹구름]中정부 “금융리스크 관리” 투자규제

《 제주 제주시 노형동의 ‘제주드림타워’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김지환 씨(39)는 석 달째 월급을 받지 못했다. 체불된 임금만 1500만 원에 이른다. 가족의 생활비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은행 대출로 막고 있다. 김 씨는 “평일, 주말 없이 하루 13시간씩 일했는데 빚만 늘었다”고 했다. 함께 일하는 박형일 씨(46)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육지 출신인 그는 월급이 밀려 지난달 살고 있는 원룸 월세를 내지 못했다. 결국 김 씨와 박 씨를 비롯한 근로자 30여 명은 밀린 임금을 달라며 4일 함께 시위에 나섰다. 》
 
1년 넘게 공사가 중단된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공사 현장. 4일 찾아간 이곳에는 중장비나 건설 인력을 찾아볼 수 없이 ‘안전제일’ 표지만 방치되어 있었다. 서귀포=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중국이 해외투자 ‘돈줄’을 막으며 제주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중국 자본이 투입된 제주 내 공사 현장이 연달아 멈추면서 도내 일자리 수도 줄어들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이 제주의 건설경기 침체로 현실화된 것이다.


○ 제주개발사업 50억 원 이상 4곳 전면 중단



4, 5일 동아일보가 제주 내 주요 건설 현장을 취재한 결과 제주에 있는 50억 원 이상 공공투자유치 사업 23곳 중 4곳의 개발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자들이 체불임금 지급 시위를 벌인 제주드림타워까지 합치면 시공액 2조7000억 원에 달하는 개발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모두 중국 자본이 추진하던 사업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 들어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자본 유출을 우려해 자국민의 해외 연간 송금액을 계좌당 10만 위안(약 1677만 원)에서 1인당 10만 위안으로 제한하는 등 외화 유출을 옥죄고 있다.

중국 부동산회사 뤼디(綠地)그룹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함께 추진 중인 ‘제주헬스케어타운’ 공사는 지난해 전면 중단됐다. 총 1조3494억 원 규모인 이 프로젝트는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에 국내 1호 외국인 투자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비롯해 휴양·관광시설을 조성한다. 여기서 리조트 공사를 맡았던 한 국내 대형 건설사는 공사비 300억 원을 받지 못해 건설을 멈췄다.

4일 찾은 헬스케어타운 공사 현장 곳곳에는 건설자재가 녹슨 채 방치됐다. 뼈대만 올라간 건물 주변에는 허리만큼 자란 잡초가 무성했다. 방치된 공사장 출입을 막는 사람도 없었다. 이처럼 대규모 사업이 잇따라 중단되면서 지난해 제주 내 건설업 체불액은 73억3800만 원으로 전년(33억9800만 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제주의 개발사업 중단은 조만간 해결되기 어렵다. 집단 시위에 나선 제주드림타워 현장 근로자 1000여 명의 월급이 밀린 건 원도급 업체인 중국건축고분유한공사(이하 중국건축)의 자금난 때문이다. 한 국내 하도급 업체 관계자는 “3월부터 5월까지 못 받은 공사비만 19억6831만 원이다. 이 중 중국건축에게 6일 받은 돈은 7억 원 남짓”이라고 했다. 제주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 공사를 맡은 국내 하도급 업체 17곳이 적게는 수천 만 원에서 많게는 약 60억 원까지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장 규모가 큰 4개 회사가 못 받은 돈만 합해도 100억 원이며 소규모 업체까지 하면 2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자금을 지급하지 못한 중국 업체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건축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외화 통제 때문에 베이징(北京) 본사에서 사업자금을 끌어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사 대금을 계산하는 날짜나 방식에 차이가 있어 하도급 업체가 요구하는 액수와는 차이가 있지만 매달 공사대금을 빠짐없이 지급하려 노력해왔다. 6월 공사비도 10일까지 단계적으로 지불할 것”이라고 했다.


○ 전방위로 번지는 제주의 중국발(發) 리스크

건설업 투자 보류로 시작된 중국발 리스크는 제주 경제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제주드림타워가 들어설 예정인 제주시 노형동의 한 식당 주인은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마당에 현장 근로자들까지 씀씀이를 줄이면서 식당 매출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인근 T공인 관계자는 “공사장 근로자들이 빠져나갈 경우 원룸이나 오피스텔 공실이 급격히 늘 수 있다”고 했다.

대규모 건설공사 중단은 최근에야 가시화됐지만 제주 주택거래 시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얼어붙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841건이었던 제주 주택거래량은 올해 5월 1386건으로 줄었다. 제주 서귀포시 H공인 관계자는 “영어교육도시나 타운하우스같이 육지 수요를 겨냥한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는 시장이 죽은 상태”라고 했다.

앞으로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미중 경제전쟁 심화에 따른 중국의 외화 반출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현재 제주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개발사업 23곳 중 중국 기업이 추진 중인 사업은 16곳이다. 싱가포르, 홍콩 등 범중국계 자본을 합하면 20곳에 이른다. 제주도 투자유치과 관계자는 “중국이 해외 투자 규제를 강화할 경우 나머지 사업장들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주=강성휘 yolo@donga.com / 박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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