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입법조사관이 부정적 의견 달면 그 법안은 끝났다고 봐야”

홍수영 기자 , 박효목 기자

입력 2018-07-07 03:00 수정 2018-07-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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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고시 출신 국회 공무원들의 세계…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숨은 실세’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의 국토교통위원회 행정실에서 입법조사관들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등이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국회사무처 5급 공채인 입법고시 출신들의 주요 무대는 국회 상임위원회다. 각 상임위에 배속된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과 전문위원, 입법조사관은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한 축이자 ‘숨은 일꾼’들이다. 여야 간, 국회와 정부 간 기 싸움 속에 이들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입법부의 ‘숨은 권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렇다고 ‘장밋빛 인생’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정기국회 등 일이 몰릴 때면 집에도 못 가는 등 애로도 많다.

각 상임위 수석전문위원은 입법고시 출신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펼칠 수 있어 ‘꽃보직’으로 꼽힌다. 법안 심사는 각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전문위원으로부터 법안의 제정·개정 이유와 수정 의견 등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의원들이 각 분야 법안의 세부내용을 모두 파악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어 맥을 짚어주는 게 이들의 주요 임무다. 그러다 보니 전문위원이 정한 방향성이 의원의 판단에 영향을 줄 때가 많다.

자유한국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전에 다뤄봤던 문제가 아니면 다른 의원이 낸 법안을 깊이 알기 힘들다. 법안이 필요한지 판단할 때 전문위원의 검토 의견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수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적지 않은 의원이 소위원회에 제출된 법안에 대한 별다른 배경 지식 없이 참석한다. 여야 간 이해가 엇갈리는 일부 쟁점 법안을 제외하면 전문위원이 낸 의견에 동조하는 식”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회가 ‘통법부(通法府)’ 노릇을 한 권위주의 시절과 달리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는 이제 역전됐다. 입법고시 출신들의 영향력도 커졌다. 중앙부처 관료를 지낸 한 의원은 “의원은 낙선하면 국회를 떠나지만 입법고시 출신들은 국회 터줏대감이다. 각 부처 공무원들이 국회에서 의원들 못지않게 이들 전문위원을 부쩍 챙기는 이유”라고 말했다.

전문위원의 힘은 ‘검토 보고서’에서 나온다. 국회법은 법안을 상임위에 상정하기 48시간 전 의원들에게 검토 보고서를 배부하도록 하고 있다. 의원들은 대개 법안보다 전문위원의 의견이 담긴 검토 보고서를 먼저 접한다. 한 보좌관은 “검토 보고서를 토대로 회의를 진행하니 보고서가 입법 논의의 출발점이자 결정적 변수”라고 말했다.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막아야 하는 의원과 부처 공무원, 이해관계자들은 검토 보고서에 담기는 문구 하나에 목숨을 건다. 국회에서 10년간 활동한 한 보좌관은 “발의한 법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 전문위원과 입법조사관이 부정적인 의견을 담으면 (그 법안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검토 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의원이 직접 전문위원을 찾아가 발의한 법안의 취지를 설명하거나 설명 자료를 전달하기도 한다.

부처 공무원들의 로비도 활발하다. 한 보좌관은 “부처 공무원들은 중점 처리 대상 법안에 대해 미리 작업을 한다. 검토 보고서에 쟁점을 모호하게 다루도록 읍소하거나 관련 자료를 전문위원이나 입법조사관에게 갖다 바친다”고 말했다. 온갖 노력을 했음에도 전문위원의 의견이 부정적이면 부처는 고민한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전문위원을 더 설득할지, 상임위 의원들을 상대로 설명할지, 아니면 법안 수정안을 낼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상임위에 전문위원이 새로 임명되면 소관 부처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줄을 서서 업무보고를 하는 진풍경도 빚어진다.

18대 국회 이후 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가 폭증해 검토 보고서 쓰기에도 허덕이기 일쑤다. 한 입법조사관은 “상임위 회의가 몰려 있는 정기국회 때는 며칠 동안 집에도 못 가거나 겨우 씻고만 나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가 파행을 이어가다가 여야 간 극적 합의로 상임위 일정을 재개하는 일도 잦다. 이 때문에 끝도 없이 대기하면서 보좌진이나 기자들에게 “언제 타결될 것 같냐”고 수소문하고 다니기도 한다.

여야 대립이 갈수록 격화되다 보니 합리적으로 정책 조언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줄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양비론’으로 흐르는 검토 보고서를 써야 할 경우가 적지 않다. 야당 정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한 당직자는 “쟁점 법안의 경우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면 다른 당 의원들이 호통을 치고 난리가 난다. 입법조사관들이 ‘취지는 좋으나 이런 점도 있고, 저런 점도 있다’는 식으로 두루뭉수리로 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에 비해 인사 적체가 심하지 않고 합격자 대부분이 큰 어려움 없이 고위직으로 승진했던 것도 옛말이 됐다. 입법고시는 1976년 처음 시작된 이후 2, 3년에 한 번꼴로 치러졌지만 2000년부터는 매년 실시되고 있다. 2000년 이후 합격자들은 과거보다 훨씬 치열한 경쟁에 노출돼 있다. 한 입법고시 출신 국회 공무원은 “앞으로는 수석전문위원까지 승진을 못 하고 퇴직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고시 출신 공무원은 국회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이지만 아직까지 의원이 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부처 전직 관료들이 적지 않게 국회에 입성하는 것과도 대비된다.

홍수영 gaea@donga.com·박효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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