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규제개혁 약속해도, 시민단체 반대하면 국회는 뒷짐”

이건혁 기자 , 이새샘 기자 , 황태호 기자

입력 2018-07-02 03:00 수정 2018-07-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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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실종에 무너지는 경제]<1>경제살리기 법안 국회서 표류

수출 내수 등 성장 동력이 꺼지면서 한국 경제가 침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주요 경제 법안이 표류하면서 가계와 기업이 불안해하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는 각 경제 주체가 공정한 경쟁의 토대 위에서 뛰어놀도록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감시자 역할만 하면 되지만 기업 활동에 일일이 간섭하면서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나 지지층에 예산을 퍼주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성향의 정책에만 매달릴 뿐이다.


○ 생색 안 나는 경제법안에 미온적인 여야

최근 1년 동안 해킹 사고로 거래소와 투자자들이 1000억 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국회는 정쟁에 몰두하느라 관련 법안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북한 가상통화 해킹 등으로 미국에서 자금세탁 방지규정을 압박하고 있는데 자꾸 입법이 지연돼 큰일”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경제 법안 처리가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여당의 경제개혁 법안이 과거 자신들이 발의한 규제프리존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보다 후퇴한 것이라는 논리로 반대한다.

일각에서는 여당의 규제 개혁 의지에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민주당은 지난 정부 때 정부의 각종 규제 완화 움직임을 대기업 특혜라고 지적해왔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규제완화 옹호론자로 표변하기가 쉽지 않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혁신성장 관련 법안은 다른 민생법안에 비해 효과가 즉각적이지 않다는 점도 정치권이 관련 법 처리를 미루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 현 정부 들어 국회는 아동수당 지급, 노인 기초연금 인상 같은 복지 관련 법안을 비교적 신속하게 통과시켰다.


○ 불투명한 제도에 투자 미루는 기업들

기업들은 규제혁신 5법에 대해 “언제 통과될지는 물론 통과 여부 자체도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규제개혁에 대한 여론이 높아질 때마다 비슷한 법이 여럿 발의됐지만 정치권에서 합의안이 도출된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질수록 기업의 투자 의욕도 꺾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핀테크 분야 신산업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인 기업 관계자는 “R&D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부의 말만 믿고 새로운 투자를 계획하긴 어렵다”며 “섣불리 투자에 나섰다가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비용만 낭비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재계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부 시민단체의 ‘입’만 바라보기도 한다. 인터넷전문은행과 관련한 은산분리 완화 논란에서 보듯 정부가 개혁입법을 추진해도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반대하면 사실상 법안 통과가 어렵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원격의료, 무인기(드론) 등 혁신산업 육성을 가로막는 규제도 시민단체와 일부 여당 의원의 반대로 개선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며 정부의 규제개선 의지보다 시민단체의 의견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정치 논리로 경제정책 판단” 지적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가 지금처럼 정치 논리로 경제 정책을 좌우한다면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살리려면 투자 환경을 재고할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정부와 여당이 기업을 규제하는 정책만 내놓고 규제 혁신은 구두선에 그치니 기업 현장에서 분노에 가까운 목소리가 나온다”고 비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투자, 고용을 늘리기 위한 유인책조차 특혜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는 “여당이 경제법안을 위한 논리를 야당이 여당 시절 쓰던 것을 그대로 쓰다 보니 설득이 어려운 것”이라며 “규제 재설계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 해서 설득 논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 / 이새샘·황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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