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유료화 대신 입점 쇼핑몰 늘려 성장기반 닦아

조진서 기자 , 박병호 KAIST 경영공학부 교수

입력 2018-06-04 03:00 수정 2018-06-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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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만 다운로드 기록한 쇼핑몰 검색앱 ‘지그재그’의 성공비결

1년간의 무료 서비스를 통해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모바일 패션 앱이 있다. 수백 개의 온라인 쇼핑몰을 한 번에 검색할 수 있게 해준다.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자 앱을 운영하는 회사는 쇼핑몰들로부터 5%의 결제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다. 첫 2주 동안 수억 원의 현금이 통장에 꽂혔다. 하지만 유료화는 철회됐다. 수수료에 부담을 느낀 소규모 쇼핑몰들이 항의했고 그로 인해 상품의 다양성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수수료를 환불해 주느라 밤을 새웠다.

2016년 2월 ‘지그재그’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서비스를 만든 크로키닷컴의 서정훈 대표(40)는 “너희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실망이다”는 한 쇼핑몰 사장의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고 한다.

수수료 수입을 포기하고 무료 서비스로 돌린 지 2년여가 지났다. 지금은 어떨까. 2018년 5월 말 기준으로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1100만 건, 월간 사용자는 200만 명, 입점 쇼핑몰 수는 3000개를 넘겼다. 이젠 결제수수료를 받을 필요도 없다. 광고수익만으로도 2018년 연매출 100억 원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만족스러운 결과다.

2년 전 서 대표의 과감한 결정에는 ‘고객 편의가 우선이다’ ‘모든 의사 결정은 데이터에 기반한다’는 경영철학이 깔려 있다. 여성 패션계의 구글이 되고자 하는 지그재그를 DBR 249호가 집중 분석했다. 요약 소개한다.


○ 패션을 모르는 게 강점인 패션 앱

지그재그는 2015년 2월 서 대표와 윤상민 최고기술개발자(이사·38)가 만들었다. 이 두 사람은 중견 정보기술(IT) 회사에서 함께 근무한 사이이며 2012년 회사를 나와 함께 크로키닷컴이란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지그재그 이전에도 스포츠팀 관리 앱, 영어 단어장 앱 등을 만들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여성 패션 앱을 기획하게 된 것은 2015년 초다. 큰 성공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의식주(衣食住) 분야를 노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동대문 쇼핑몰 업체 사장과 대화를 하다 아이디어를 얻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온라인 패션 편집숍들이 우후죽순 늘어났고 그중 일부는 수백, 수천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기도 하지만 이런 편집숍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플랫폼 앱이 아직 없다는 데 착안했다.

IT 개발자 출신인 서 대표와 윤 이사는 패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래서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패션, 특히 여성 패션은 개인 취향을 많이 타는 영역이다. 하지만 지그재그 팀은 ‘우리는 패션을 잘 모른다’고 인정한 다음, 철저하게 고객들의 의견과 데이터에만 의존해 앱을 만들었다. 그 대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즉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디테일하게 인지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고 서 대표는 말한다.

이런 철학에 따라 지금도 지그재그 직원들은 본인의 패션 감각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훈련받는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어떤 트렌드의 상품을 추천해 줄 것인지, 가격을 표시할 때 ‘원’자를 붙일 것인지, 사진에 얇은 테두리를 두를 것인지, 광고상품은 3열로 보여줄 것인지 2열로 보여줄 것인지 등을 담당자 임의로 결정하지 않는다. 반드시 과거 데이터를 보거나 한두 달 시험 적용해 보고 결정한다. 스마트폰 앱의 자동 업데이트 기능을 이용해 전체 사용자의 약 5%에게 먼저 적용해 본 뒤 그 결과에 따라 전체로 확대할지를 정하는 것이다.


○ 소규모 광고주를 배려한 큐레이션 기능

현재 지그재그의 주 고객층은 패션에 민감한 10대와 20대 여성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앱에 들어와 자기가 좋아하는 쇼핑몰을 둘러보거나 ‘꽃무늬 드레스’ ‘롱패딩’ 같은 키워드로 검색한다. 사용자당 일평균 접속 횟수가 5회에 달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유료화 정책을 포기하고 입점 쇼핑몰 수를 늘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수익은 광고에서만 나온다. 광고 역시 소비자에게 거추장스럽지 않고 유용한 정보가 되도록 개인화해서 보여준다. 연령, 취향, 과거 구매 기록이나 검색 기록 등 다양한 정보에 따라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그 사람에게 맞는 광고 상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유사한 성격의 개체들을 한 그룹으로 묶어주는 기법을 통계학에서는 ‘클러스터링(clustering)’이라고 부른다. 기술만 놓고 볼 때 클러스터링 기법은 ‘알파고’ 같은 고급 인공지능과는 비교되지 않는 초보적인 기술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어떤 특성을 선정해 분석에 활용할 것인가이다. 지그재그가 고객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큰 공을 들이는 이유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상품을 많이 구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소규모 쇼핑몰을 배려하는 것도 지그재그의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쇼핑 앱들은 대형 광고주의 상품을 우대해서 화면의 더 좋은 자리에, 더 자주 노출시켜 준다. 하지만 지그재그는 낮은 광고비를 받은 상품이라도 그 상품과 딱 어울리는 성향의 소비자에게는 자주 노출되게 한다.

‘광고 품질 테스트’도 개발했다. 지그재그에 올라오는 모든 광고상품은 우선 1∼2시간 무작위로 사용자에게 노출된다. 그동안 클릭 수가 낮게 나온 비인기 상품은 광고주가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화면상 노출 빈도가 줄어든다. 인기도 없는 상품이 괜히 화면에 노출만 많이 돼서 광고비가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 역시 쇼핑몰들과의 상생을 위한 장치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박병호 KAIST 경영공학부 교수 mediapark@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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