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인의 業]반도체가 세계 1등인 이유

동아일보

입력 2018-06-01 03:00:00 수정 2018-06-0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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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동인 직업학 박사
국보 285호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그림은 308점이다. 이 중 고래와 관련된 그림이 53점으로 가장 많다. 다양한 고래의 종류, 고래 잡으러 가는 배, 고래 해체 모습 등이다. 후손들에게 고래 사냥 방법을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새겼을 것이란 추론이 많다.

바다에서 가장 힘이 센 고래를 잡으려면 배가 부실해선 안 된다. 신석기시대부터 그려진 암각화에는 17, 18명 정도가 탄 배가 보인다. 울산 지역에 살았던 조상들은 이미 7000년 전부터 규모가 큰 튼튼한 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울산에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들어선 것은 과연 우연일까.

삼면이 바다인 우리는 일찍이 조선 기술이 뛰어났다. 신라 장보고는 교관선(交關船)이라는 배를 만들어 해상무역을 주름잡았고, 고려는 배를 만드는 장인들만 3만 명이 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둔 승리는 거북선 판옥선 등 성능 뛰어난 배가 뒷받침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1971년 조선소 지을 돈을 빌리기 위해 영국 금융회사 관계자에게 당시 500원짜리 지폐에 있던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너희보다 300년이나 먼저 철갑선(거북선)을 만든 나라였다”고 설득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다.

조선업뿐 아니다.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가진 업종들을 살펴보면 그 뿌리가 제법 길고 튼튼하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을 보유한 나라다. 선사시대부터 뛰어난 건축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고인돌의 나라’는 ‘고분(古墳)의 나라’, ‘성곽(城郭)의 나라’로 이어지면서 기술력이 더욱 축적됐다. 현대에 와서 건설업이 국내 경제개발이나 ‘중동건설’ 등을 통해 국가 발전의 기폭제 역할을 했음은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포스코로 상징되는 철강 강국의 뿌리가 가야의 철기문화로 올라가고, 세계 수준인 우리 인쇄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무주정광대다라니경)과 금속(직지심체요절) 인쇄물을 만든 DNA를 이어받은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삼성 이건희 회장은 1974년 “젓가락을 사용해 온 우리는 손재주가 좋아 반도체 생산에 아주 적합하다”고 했다. 그런 반도체가 지금 우리나라 전체 수출 비중의 20%를 웃도는 효자산업이 됐다. 성형수술 등 섬세한 손재주가 필요한 의료기술이 강하고, 골프 양궁 등 손으로 하는 운동이 세계 최강인 원인을 ‘밥상 위의 서커스’(노벨 문학상 수상자 펄 벅)라는 찬사를 받는 젓가락 문화에서 찾기도 한다.

‘국뽕’이란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직업들은 이처럼 분명한 역사적 문화적 뿌리를 갖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의 직업 변화 못지않게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가 중요한 이유다.
 
육동인 직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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