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월세 8만원…“저소득 청년들에게 싸고 좋은 집 주고파”

홍콩=김단비기자

입력 2018-05-31 21:38 수정 2018-05-31 22:27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성산2교 사거리 뒤편 다세대주택. 11가구가 사는 이곳은 겉보기에 다른 다세대주택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1층에 약 33㎡의 사랑방이 있다. 이웃들이 모여 맥주 한 잔 하거나 저녁을 해먹을 수 있다.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니 층간소음 같은 문제로 얼굴 붉힐 일이 적다. 사람 냄새 나는 이곳 원룸의 월세는 8만~30만 원. 주변 비슷한 원룸의 60~70% 수준이다. 이 다세대주택은 사회적기업 ‘녹색친구들’이 지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 사회적기업의 ‘그라민 은행’

2012년 설립된 ‘녹색친구들’은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월세로 내느라 목돈 마련이 쉽지 않은 20, 30대를 위해 임대료가 싼 임대주택을 짓고자 했다. 출퇴근하는 데 1시간 반 안팎이 걸리는 서울 외곽이 아니라 도심 역세권에 짓고 싶었다. 문제는 땅도, 돈도 없다는 것. 저소득 청년 주거문제 해결이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담보는 없고 신용도 모자라는 사회적기업에 선뜻 거액을 빌려줄 금융기관은 없었다.

녹색친구들은 서울시 문을 두드렸다. 때마침 시는 시중 은행 대출이 어려운 소규모 사회적기업을 위한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하고 있었다. 빈민에게 담보 없이 소액대출을 해주는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과 비슷하다. 금리도 연 3% 이하다.

시는 녹색친구들의 부채를 비롯한 재무상태와 이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면밀히 검토했다. 건축비의 70%에 해당하는 11억 원과 시 소유 토지를 빌려줬다. 녹색친구들은 건축비는 연 2% 이자를, 토지에 대해서는 연간 이용료 1200만 원을 내면 됐다.

이들은 이 종자돈을 토대로 2016년 마포구 성산동에 사회적 임대주택(사회주택) 1호점, 11가구를 분양했다. 이어 서대문구 창천동과 관악구 행운동에 각각 2, 3호점을 지었다. 소득이 도시근로자의 월평균 중위소득 70% 이하인 청년들이 입주했다.

김종식 녹색친구들 대표는 “시중 은행은 총 건축비의 30% 이상이 있어야 대출해주는데 우린 그런 돈이 없었다. 시가 우리의 가치를 믿고 투자해줘서 저소득 청년들이 싸고 좋은 집을 얻었다”고 말했다.

직원 240명 가운데 200명이 발달장애인인 ‘베어베터’도 사회투자기금 혜택을 받은 사회적기업이다. 2012년 회사를 만들면서 발달장애인 51명을 고용했다. 이들에게 인쇄기술을 알려주고 명함, 달력을 비롯한 인쇄물을 제작했다.

발달장애인 고용을 더 늘리기 위해 이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는 제과업에 도전했다. 이를 위해서는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시설을 갖춰야 했다. 사회투자기금 8억 원을 융자받았다. 이진희 대표는 “시중 은행이 보면 대출금도 갚을 수 없는 사회적기업을 키우려면 법인세, 소득세 감면보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도록 사회투자기금이나 고용연계제도 같은 것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5년간 일자리 1851개 창출


지난달까지 조성된 사회투자기금은 약 675억 원이다. 시에서 552억 원, 9개 위탁운용기관에서 123억 원을 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녹색친구들, 베어베터 말고도 낡은 고시원을 리모델링해 청년 주거환경 개선에 쓰는 선랩건축사사무소, 탈북민 정착을 돕는 커피창고 등의 사회적기업에 331건, 642억 원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일자리 1851개가 생겼고, 381가구가 사회주택에서 살게 됐다.

원리금 상환은 순조롭다. 현재 연체된 금액은 사회적기업 1곳, 1억6000만 원뿐이다. 상환은 분기별로 갚거나, 사회주택 같은 경우는 임대계약이 체결되면 35%를 상환하고 나머지는 5년간 갚는다. 노수임 서울시 사회적경제정책과 팀장은 “돈을 갚아야 하는 사회투자기금은 사회적기업 운영의 유연성과 책임감을 높여 회수율이 높다”며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기존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기 어려워 도전해보지도 못하는 사회적기업을 위해서는 이 같은 ‘사회적 금융’도 성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 홍콩 장애인 제과점 ‘아이베이커리’ ▼
28일 홍콩 섬 지하철 케네디타운역 근처 주택가.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작은 빵집에서 직원이 갓 나온 빵을 진열하고 있었다. 이 직원은 다소 어눌한 말투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카운터 뒤편 유리벽 너머 100㎡ 남짓한 작업장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직원 10여 명이 빵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계량기에 반죽을 올리고, 모양을 빚어 오븐에 굽는 이들은 모두 지적장애 또는 자폐성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이다. 재료 배합부터 쿠키 반죽, 굽기, 포장까지 스스로 해낸다.

이 빵집은 아이베이커리(IBakery) 1호점이다. 홍콩의 가장 오래된 자선단체 퉁와그룹(1870년 설립)이 2010년 ‘발달장애인 고용’을 목표로 만든 제과점이다. 아이베이커리라는 이름에는 ‘발달장애인인 나도 빵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발달장애인 6명이 시작해 현재는 홍콩 전역 11개 매장에서 발달장애인 72명이 일하고 있다. 비장애인 직원은 48명이다. 작년 매출이 37억 원에 이르지만 출발부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한적한 주택가에 1호점을 연 뒤 2년간 적자를 냈습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기관, 대기업 등이 몰린 번화가에 2호점을 열어야 브랜드를 알릴 수 있다고 판단했지요.”

퉁와그룹에서 병원과 환자에 대한 자선활동을 담당하다 아이베이커리 창업에 나선 플로렌스 찬 씨(42)는 6년 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첫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홍콩시가 사회적기업에 주는 보조금 2억 원이었다. 시에 보조금 신청을 하자 공무원들은 1호점에 나와 현장 실사를 벌였다. 발달장애인을 실제로 고용하고 있는지, 근무여건은 어떤지 등을 꼼꼼히 점검하는 등 모두 4차례 평가를 거쳤다.

2호점은 홍콩시청, 상하이은행 등이 있는 지하철 완짜이(灣仔)역 인근에 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 앞 정도 되는 곳이다. ‘발달장애인이 만든 빵은 위생적이지 못할 것이다’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오픈 키친’ 형태로 작업장을 꾸몄다. 점심에 혹은 퇴근길에 우연히 들러 인상적인 빵 맛을 본 이들이 다시 찾았다. 단골이 늘면서 1호점 적자를 메워줄 정도였다.

아이베이커리 매장은 벽지와 페인트를 항상 밝은 색으로 쓴다. 그림을 많이 걸어 화랑 같은 느낌이 나도록 한다. 장애인 직원이 밝게 일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에 신경을 쓴 것이다.

찬 씨는 “직원들이 긴장하면 손님도 덩달아 긴장한다. 아이베이커리는 장애인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장애인 취업률은 6%가량이다. 장애인의무고용제를 둔 한국의 36.9%에 비하면 매우 낮은 취업률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아이베이커리의 등장과 성장은 홍콩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홍콩=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