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글로벌 포커스]사우디 원전수주 한국-러시아-중국 3파전… 한미 컨소시엄이 필승카드

박민우 특파원

입력 2018-05-03 03:00 수정 2018-05-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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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에너지 장관, 예비사업자 선정 앞두고 3일 방한 ‘수주 청신호’



사우디아라비아 원자력발전소 수주에 ‘그린 라이트’가 켜졌다. 사우디가 추진하는 200억 달러(약 21조 원) 규모의 원전 프로젝트 예비사업자 선정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사우디의 원전 정책을 총괄하는 칼리드 알팔리 에너지산업광물자원부 장관(사진)이 3일 한국을 방문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알팔리 장관은 4일 주한 사우디대사관과 에쓰오일 주최로 열리는 리셉션에 참석하기 위해 3일 방한한다. 이 행사에는 백운규 산업부 장관도 참석할 예정이다. 사우디 정부가 한국과 원전 협력 방안을 추가로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는 점에서 어떤 대화가 오갈지 주목된다. 알팔리 장관은 한국의 원전 기술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백 장관은 3월 12일 사우디에서 알팔리 장관을 만나 ‘한국형 원전’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했다. 당시 산업부는 “최종 수주 단계까지를 고려한 최고위급 협력채널을 확보했다”고 면담 의미를 설명했다.


○ 한국-러시아-중국 3파전 예상

사우디 원전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향서를 제출한 곳은 한국(한국전력)을 비롯해 미국(웨스팅하우스) 러시아(로사톰) 중국(중국광핵집단) 프랑스(프랑스전력공사) 등 5개국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정부는 이달 초 2∼3곳으로 압축한 예비사업자 명단을 공개하고 연말까지 최종 사업자를 확정할 방침이다.

원전업계는 한국이 러시아, 중국과 함께 예비사업자 명단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는 3세대 원전의 건설기간과 사업비가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 경영난으로 2006년 일본 도시바에 인수된 웨스팅하우스는 도시바에 거액의 손실을 남긴 채 올해 1월 캐다나 사모펀드에 팔렸다. 프랑스 아레바의 원전 사업부문을 인수한 프랑스전력공사 또한 재정난을 겪고 있어 사업 확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 美 원자력법 123조가 변수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에 한국형 원전 ‘APR 1400’을 완공한 한전은 현재 가장 유력한 사업자 후보로 꼽힌다. 백 장관은 “바라카 원전을 건설할 때 8100번의 설계 변경이 있었지만 사막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를 이겨내고 성공했다”며 “여기에 알팔리 장관이 매혹됐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전통적 우방 UAE가 사우디 원전 수주전에서 한국에 힘을 보태기로 한 점도 수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원전 수주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 원자력법 123조다. 한국형 원전 ‘APR 1400’은 웨스팅하우스의 ‘AP 1000’을 기초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미국 원전 기술을 사용하는 나라는 미 원자력법 123조에 따라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어야 한다. 또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위해서는 미 정부와 의회에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우디가 APR 1400을 선택할 경우 미국은 미 원자력법 123조에 따라 미-사우디 원자력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에도 계약 전 미-UAE 원자력협정이 체결된 바 있다.


○ ‘그린 라이트’ 켠 사우디의 속내

그러나 사우디는 미국의 원자력법 123조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무엇보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포기하는 조건의 ‘골드 스탠더드’ 방식을 원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사우디 핵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킹압둘라 원자력·재생에너지 시티(KACARE)는 지난해 10월 “원전의 연료로 쓰일 우라늄을 자급자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농축우라늄을 자체 생산할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란의 핵 위협을 지렛대 삼아 미국이 원전을 수주하는 조건으로 미 원자력법 123조 적용의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파기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란은 “핵 합의가 파기되면 48시간 안에 농도 20%의 농축우라늄 생산을 재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미 의회와 이스라엘 등은 중동 지역의 핵 확산을 우려해 사우디에도 ‘골드 스탠더드’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의 원전업계를 살리겠다고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 원전 수주를 위해 3월 방미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우라늄 농축을 허용해 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라이벌 이란의 핵 협력국인 러시아나 아직 해외에 원전을 건설한 경험이 없는 중국보다 한국을 선호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동맹국인 미국이 소외되는 것 또한 원치 않기 때문에 본 입찰에서 한국과 미국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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