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안평 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

유원모 기자

입력 2018-04-23 14:09 수정 2018-04-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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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13일 만난 심경호 교수는 청백의 순수예술 세계를 꿈꾼 안평대군의 삶을 “35년간의 몽유”라고 설명했다. 김경제기자 kjk5873@donga.com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이용(李瑢),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에게 이보다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35년이란 짧은 생애를 보냈지만 그가 남긴 시와 글씨는 지금껏 조선시대를 통 들어서도 손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대엔 이 같은 재능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었다. 정치적 야욕이 넘쳤지만 학문과 예술 감각은 뒤지던 1살 터울의 형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것. 결국 어린 조카 단종이 즉위한 뒤 강화도로 유배돼 사약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300여년 후 정조는 “안평대군 글씨가 국조(國朝)의 명필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건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흠모하는 지식인들은 끝없이 나타났다.

최근 안평의 삶을 다시금 조명한 평전 ‘안평: 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이 출간됐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가 쓴 책으로 12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평전임에도 독특하게 인물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다. 안평이 남긴 시문(詩文)과 문헌 등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심 교수는 “28년 전 일본 교토대에서 유학할 때 우연히 ‘몽유도원도시화권’을 마주한 뒤 안평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수집해 번역해왔다”며 “안평을 자의적으로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평은 아버지 세종의 재위 시절 각종 국가편찬사업에 참여했다.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한시를 직접 지었을 뿐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과정에서 한자 표준음 연구서인 ‘동국정운’의 편찬 총괄도 맡았다. 심 교수는 “세종은 학문과 서적 출판을 국가 경영의 중심에 놓았고, 이 때 만들어진 각종 편찬서들이 조선시대 지성의 뿌리가 됐다”며 “그 핵심을 안평에게 맡겼다는 뜻은 그의 학문적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 본 무릉도원을 당대 최고 화원인 안견에게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 그림 왼쪽에 안평이 작품 제작과정과 해설을 쓴 ‘도원기’가 함께 있다. 알마 제공
무엇보다 안평과 뗄 수 없는 작품은 ‘몽유도원도’다. 안평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당시 최고의 화원이었던 안견에게 그리게 한 작품이다. 안평이 직접 제작 과정과 해설을 담은 ‘도원기’와 신숙주, 정인지 등 당대의 손꼽히는 문인들이 남긴 글들을 함께 묶은 ‘몽유도원도시화권’이 탄생했다. 이후에도 이들은 시회(詩會)를 조직해 조선 초 문학과 예술의 수준을 높여갔다.
그러나 정치인과 예술가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절, 이 예술 모임은 정치적 세력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심 교수의 분석이다.

심 교수는 “왕의 아들이면서 지성의 모임을 주도했던 안평의 행위는 실제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수양대군 등 정치적 반대파에겐 권력으로 느껴졌다는 사실이 안평의 비극이 지닌 진정한 의미”라며 “예술과 정치가 여전히 분리되지 못하는 2018년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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