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회장 잔혹사… 정권마다 ‘갈등→외압→사퇴’ 되풀이

변종국 기자 , 이은택 기자 , 한우신 기자

입력 2018-04-19 03:00 수정 2018-07-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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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회장 8명 모두 ‘중도하차’




“포스코가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이 최고경영자(CEO)의 변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18일 이사회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퇴 배경에 대해 포스코의 미래를 위해 젊은 CEO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에선 건강상의 이유도 들었다.

그러나 최근까지만 해도 권 회장은 경영에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올 1월 국내 철강사 수장 중 처음으로 미국 라스베이거스 국제가전전시회(CES)에 참석해 신사업을 모색했다. 지난달 31일 포스코 창립 50주년을 맞아 포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포스코의 미래 50년’을 이야기하며 신(新)성장 분야와 리튬사업에 대해 장시간 이야기했다. “왜 이리 주어진 시간이 짧냐”며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당시 회장 교체설이나 정치적 압력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저희들이 자의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정도에 입각해 경영하는 것이 최선책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여운을 남겼다. 외압을 부인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권 회장에게 거리를 둬왔다. 권 회장은 문 대통령이 미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으로 해외순방을 갈 때 동행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모두 빠졌다. 지난해 6월 미국 순방에는 동행 기업인이 총 52명이었지만 권 회장은 제외됐다. 철강 분야 무역마찰 때문에 권 회장이 참여할 명분과 이유도 있었던 만큼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관측이 많았다.

최근 검찰 등 사정당국에선 ‘다음 표적은 포스코’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검찰은 권 회장의 이권사업 개입 의혹, 에콰도르 기업 인수 과정에서의 비리 의혹, 포스코건설 송도사옥 헐값매각 의혹 등 주변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가 고발한 해외 기업 인수 및 매각 관련 비리 건은 검찰 첨단범죄수사부에 배당돼 수사가 시작됐다. 포스코그룹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압박이 거세졌다.

권 회장은 이번 주 들어 갑자기 주간 일정을 모두 바꾸고 목요일(19일) 이후 일정은 아예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안팎에선 이 시기에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검찰의 압박이 권 회장의 사퇴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3월 연임에 성공한 권 회장의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권 회장의 사임으로 포스코는 2000년 10월 민영화 이후 어느 회장도 정권교체의 파장을 피하지 못하고 중도하차 했다는 오명을 남겼다. 민영화 당시 CEO였던 유상부 5대 회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뒤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유죄를 선고받고 한 달 만에 사퇴했다. 이구택 6대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뒤 1년 만에 사퇴했고 세무조사 무마 청탁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 때 선임된 정준양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1년 뒤 물러났고 이후 배임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계에서는 이제라도 포스코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이사회에서도 권 회장 사임을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포스코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10.79%)이다. 그 외는 외국인 지분이 57.31%로 절반이 넘고 나머지는 포스코 자사주 8.24%와 소액주주 지분이다. 정부 지분은 하나도 없지만 뚜렷한 오너나 영향력을 행사할 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연금공단 지분과 각종 규제 감독권을 앞세운 정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구조다. 2002년 민영화된 KT도 유사한 구조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민영화 이후 포스코는 이미 제도적으로는 독립성을 갖췄지만 정치와 관례가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포스코는 CEO 선임 절차의 첫 단계인 승계 카운슬(Council·위원회)을 다음 주 초 열어 선임 절차를 논의하기로 했다. 차기 회장으로는 황은연 전 포스코인재창조원장, 오인환 포스코 대표이사, 최정우 포스코켐텍 사장, 장인화 포스코 대표이사 사장 등이 거론된다.

변종국 bjk@donga.com·이은택·한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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