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의 ‘진공 실험실’ 만들어 달과 똑같은 환경 재현한다

이혜림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8-04-16 03:00 수정 2018-04-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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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기술硏 칠곡 공장 르포
2016년 NASA 제안으로 개발 시작… 연말 우주탐사로봇 성능 시험 가능
2030년엔 달착륙선 쏘아 올려 달 표면서 흙 채취해 지구로 귀환


“달에 간 탐사선에 가장 위협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흙먼지입니다. 기계의 오작동은 물론이고 고장까지 일으킬 수 있거든요. 흙먼지를 실험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진공 실험실을 만든 이유입니다.”

11일 경북 칠곡에 위치한 한 공장.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극한건설연구단 신휴성 단장이 이 가로세로 높이 각 5m의 원통형 금속 구조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2016년 미국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센터에서 먼저 제안을 해와 개발을 시작했다”며 “올해 말 내부 장치가 완공되면, NASA의 파트너로서 주요 우주 탐사로봇(로버)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금속 구조물의 이름은 지반열진공체임버(DTVC). 내부에 인공적으로 우주와 비슷한 진공 상태를 만들고, 영하 190도에서 영상 150도까지 정교하게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여기에 달의 토양을 무게나 모양, 성분이 비슷하게 인공으로 만든 흙(복제 월면토)을 넣어 달의 표면 환경을 완벽하게 모사할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공 상태이면서 흙이 있는 달 표면 환경을 구축해 놓은 곳이다.

신 단장이 스위치를 켰다. 눈앞에서 체임버의 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옆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오른쪽으로 비켜섰다. 동시에 앞에서 대기 중이던 컨테이너가 레일을 타고 구조물 안으로 들어갔다. 신 단장은 “이 컨테이너 안에 복제 월면토를 채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달의 표면 환경을 연구할 실험 장비를 만들게 된 것은 한국이 계획 중인 2단계 달 탐사를 위해서다. 정부는 2030년 달착륙선을 쏘아 올려, 달 표면에서 흙을 채취해 지구로 귀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발사체뿐만 아니라 과학 실험 및 탐사 장비도 다양하게 개발하고 있다. 그중에는 달 표면에서 활약할 로버와 달의 자원을 채취하기 위한 드릴이 포함돼 있다.

이들이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달과 비슷한 환경에서 사전 성능 시험을 거쳐야 한다. 달의 환경이 지구와 많이 달라서다. 신 단장은 “달은 진공 상태이기 때문에 미세한 먼지가 정전기를 지닌 채로 날아다니다가 물체가 다가오면 강하게 달라붙는다”며 “이로 인한 고장을 막기 위해서는 진공 상태에서 먼지를 맞는 실험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달 환경을 똑같이 재현해 낼 수 있는 실험실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인공 달 환경을 만들려면 크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대기가 거의 없는 진공 환경과 달 표면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흙 또는 먼지다. 진공 환경을 만드는 체임버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내부에 흙을 담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체임버 내부의 공기를 뽑아내서 진공 상태를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바람이 일어 흙먼지가 날리기 때문이다. 이 흙먼지는 진공 체임버의 오작동을 일으킨다.

이런 문제 때문에, 2011년 NASA에서 개발한 화성탐사로봇 큐리오시티와 탐사 장비들은 흙이 없는 ‘클린’ 상태의 진공 체임버에서 실험을 한 뒤, 다시 달과 비슷한 사막에 가서 추가로 성능 테스트를 받아야만 했다. 두 조건을 동시에 실험할 수 있는 진공 체임버의 필요성을 느낀 NASA는 2016년 신 단장이 이끄는 극한건설연구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연구단은 기존 진공 체임버의 문제를 분석했다. 진공 체임버는 세 단계로 진공 상태를 구현한다. 먼저 스크루 펌프로 공기를 압축시켜 체임버 안의 공기를 빨아들인다. 이어 터보펌프를 가동해 프로펠러 날개처럼 생긴 블레이드를 고속으로 회전시켜 체임버 속 물과, 질소 등 대기 분자를 밖으로 배출시킨다. 마지막으로 냉각펌프를 이용해 체임버 안에 일부 남아 있는 분자를 순간적으로 얼린다. 이렇게 펌프를 20시간 가동하면 지상 대기압의 100억분의 1 수준인 목표 진공 상태를 만들 수 있다. 달 표면보다는 여전히 1만 배쯤 공기가 많지만, 실제론 아주 미세한 차이라 달 환경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연구단은 흙먼지가 공중으로 날리지 않으면서도 진공 상태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대기 흡입 속도를 실험을 통해 찾아냈다. 흙 사이에 있던 수분과 가스 등이 빠져나오는 데 필요한 시간을 주는 게 관건이었다. 정태일 전임연구원은 “복제 월면토 1.5t을 체임버에 넣은 뒤 14일 동안 천천히 대기를 빨아들여 1000만분의 1 기압의 진공 환경을 만드는 속도”라며 “흙먼지가 거의 날리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진공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극히 일부 날리는 흙먼지는 필터로 처리 가능한 수준이라 체임버에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연구단은 현재 칠곡에 있는 체임버를 7월 초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본원의 극한환경실험동으로 옮길 예정이다. 이후 올해까지 온도조절 장비를 추가하고, 본 체임버와 결합해 실험할 수 있는 보조 체임버를 내년에 추가해 성능 향상을 꾀할 계획이다. 연구원에서 개발한 복제 월면토 제조 자동화 설비도 곁에 들어서서 본격적인 달 환경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칠곡=이혜림 동아사이언스 기자 pungni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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