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아토피-암… 腸 속 ‘착한 미생물’로 치료한다

동아일보

입력 2018-04-13 03:00 수정 2018-04-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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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硏-서울대병원-바이오기업
한국인 ‘마이크로바이옴’ DB 구축



우리 몸에서 인체 세포가 차지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는 몸속에 사는 미생물 군집인 ‘마이크로바이옴’으로 이뤄져 있다. 100조 개에 이르는 미생물은 대부분 소장, 대장 등 소화기관에 서식하는 장내 미생물들이다. 최근 비만부터 당뇨, 아토피, 관절염,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이 마이크로바이옴과 관련이 깊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학계와 의료계는 새로운 치료법을 찾기 위해 ‘제2의 유전체(게놈)’로 불리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주목하고 있다.

장내 미생물의 대사산물은 면역세포, 내분비세포는 물론이고 신경세포에까지 작용해 생체 기능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마이크로바이옴의 구성은 각종 질병의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례로 제니퍼 와고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암센터 교수팀은 유익한 장내 미생물이 악성 흑색종에 대한 면역반응을 돕는다는 사실을 밝혀 올해 1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와고 교수는 “암 환자들의 대변 시료에서 특정 박테리아 수치가 일반인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장내 미생물을 조절한 결과 항암 효과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최근 장내 미생물 조절로 암, 비만의 개선 효과를 확인한 김유미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학계에선 같은 약이 어떤 사람에게는 듣고 어떤 사람에게는 듣지 않는 이유도 장내 미생물 구성 차이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내 미생물이 얼마나 다양하게 분포해 있고, 어떤 미생물이 많고 적은지는 식습관이나 운동 등 생활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만큼 개인별 차이는 물론이고 국가별 차이도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은 자국인의 표준 마이크로바이옴 지도를 만드는 ‘마이크로바이옴 뱅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는 2016년 말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서울대병원, 바이오기업 천랩이 구심점이 돼 ‘한국인 장 마이크로바이옴 뱅크(KGMB)’ 구축에 나섰다. 건강한 한국인의 대변에서 발견된 장내 미생물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고 실물자원을 표준화해 보존, 관리하는 것이다. 이정숙 생명연 책임연구원은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 표준 데이터가 있어야 질병과 장내 미생물 간 상관관계를 밝힐 수 있다”며 “그동안은 환자의 대변 샘플에서 추출한 장내 미생물들의 총체적인 게놈(메타게놈)을 분석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균주 실물자원도 없어 후속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현재까지 의학적 진단을 기준으로 건강한 성인 256명의 대변 시료를 확보했다. 시료 속 장내 미생물을 배양한 뒤, 메타게놈과 대사산물 등을 분석해 종을 분류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대상은 유산균이나 대장균, 바이러스 등을 제외한 절대혐기성세균이다. 이 연구원은 “마이크로바이옴의 대부분은 절대혐기성세균으로 이뤄져 있는데 다른 균들에 비해 밝혀진 바가 적기 때문에 연구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배양 결과 연구진은 메타게놈 분석에서 예측한 미생물 3350종 중 300여 종의 실물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중 58종은 새롭게 발견된 종으로 확인됐다. 우리 몸에 유익한 세균으로 판명될 경우 미생물이나 미생물의 대사산물을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 연구원은 “KGMB는 이르면 2019년에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연구자들은 DB에서 정보를 얻거나 균주를 분양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순수 국내 확보 자원인 만큼 상업화 연구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특정 기업이 독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향후에는 영·유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별 장내 미생물 변화를 파악할 수 있도록 최대 800명의 대변 시료를 분석할 계획이다. KGMB 구축사업은 2023년까지 계속된다.

한편 국내 바이오기업 MD헬스케어는 최근 서울대병원 등과 함께 장내 미생물의 구성 분포를 분석해 위암, 대장암, 폐암 등 9가지 암을 90% 정확도로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진단 방법을 보완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다. 일동제약의 프로바이오틱스 아토피 치료제 ‘ID-RHT3201’은 지난해 임상시험을 통과해 상용화를 앞뒀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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