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3년전 美출장때 “북핵 연구 치우쳐” 소장 교체 요구

김상운 기자 , 한상준 기자 , 박정훈 특파원

입력 2018-04-09 03:00 수정 2018-04-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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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워싱턴 한미연구소 압박 논란]
한미硏 예산지원 중단 배경은


청와대가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 구재회 소장 교체를 요구하고 20여억 원 규모의 예산 지원 중단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2015년 5월 구 소장을 직접 만난 직후 “소장 임기는 3년으로 세 번 이상 재임할 수 없다는 내용을 연구소 정관(定款)에 명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구 소장이 8년간 재직한 점을 감안하면 1년 후에 사퇴하라고 종용한 것이다. 지난달 정부 산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USKI 소장 교체를 요구하고 예산 지원 중단을 통보하기 3년 전에 김 원장이 비슷한 요구를 한 셈이다.


○ 김기식 “USKI 소장 임기 명시해야”

국회 정무위원회가 KIEP로부터 제출받은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김 원장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던 2015년 5월 26일(현지 시간) KIEP 관계자들과 미 워싱턴의 USKI를 방문해 구 소장, 제니 타운 부소장, 칼 잭슨 교수를 만났다. 이 만남은 KIEP가 후원해 자유한국당이 ‘황제 출장’이라고 비판하는 그 출장 도중 이뤄졌다.

김 원장은 “연구소가 북한 문제 연구와 네트워크 활동에 너무 치우친 느낌이다. 북핵 문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슈들을 적극 반영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USKI가 북핵 관련 오래된 이슈에 대한 평가와 탁상공론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USKI는 당시에도 38노스 사이트를 통해 북핵 시설을 모니터링한 위성자료를 잇달아 공개해 주목받았다.

김 원장은 특히 연구소 운영 문제를 집중 제기하며 구 소장과 38노스 운영자 조엘 위트 선임연구원을 직접 거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의해 프로그램이 좌우되거나 시스템이 흔들리는 구조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고 했다. USKI 관계자들과 면담한 직후 김 원장은 KIEP 관계자들에게 “연구소 정관에 소장 임기를 명시해야 한다. ‘소장 임기는 3년이며 세 번 이상 재임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정관에) 포함시키는 걸 검토하라”고 말했다.


○ 트럼프 행정부에서 입각 시도했던 구 소장

KIEP가 2006년부터 매년 20여억 원을 지원해 온 USKI에 대한 논란은 2014년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이 또한 김기식 당시 의원이 주도했다. 김 의원은 당시 정무위에서 “USKI에 예산만 지원할 뿐 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20대 국회에선 민주당 정무위 간사인 이학영 의원이 이어받아 지난해 8월 구 소장의 장기 재직 문제 등을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 재직 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정무위 간사였던 김용태 국회 정무위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기식 의원이 하도 ‘우리 예산 20억 원을 어떻게 썼는지, 연구소가 내는 성과가 뭔지는 알아야 한다’고 해서 KIEP가 참여하는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했다”고 말한 뒤 “이학영 의원이 정무위에 들어와서는 회계보고서 등 각종 운영 자료를 다 보고하라고 했고 이에 USKI는 ‘말이 되느냐’고 반발해 왔다”고 전했다.

아무튼 김기식 원장의 문제 제기를 비롯해 현 여권에선 USKI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다가 정권 교체 후 폭발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 문제를 잘 아는 외교 소식통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실세들과 친분이 있던 구 소장을 교체하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하버드대 출신으로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계 미국인인 구 소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입각을 시도했을 정도로 자타공인 보수 성향 인사. 특히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이재오 전 의원과 막역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현 여권 관계자들이 USKI에서 연구하도록 배려하기도 했으나 보수 인사들과 가까웠다. 로버트 갈루치 USKI 이사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 정부에서 구 소장을 해임하라는 많은 메시지를 받았으며 제니 타운 부소장 해임 요구도 있었다”고 밝혔다.


○ 靑 “국회·경사연이 진행한 일”

청와대는 논란이 확산되자 8일 “청와대가 나서서 구 소장 교체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 이 문제는 국회의 문제 제기에 따라 관리 감독을 맡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가 진행한 일”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USKI에 자금을 지원한 KIEP는 국무조정실 산하 경사연이 관리 감독을 맡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멘토인 성경륭 한림대 교수가 올 2월 경사연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성 이사장도 이날 “USKI에 대한 국회의 지적이 수년간 있었는데 KIEP가 만든 개선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3월 29일 KIEP 이사회에서 예산 중단을 최종 결론 낸 것”이라고 밝혔다.

이태호 청와대 통상비서관과 홍일표 선임행정관이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김준동 KIEP 부원장이 지난해 11월 2일 이 비서관과 홍 행정관에게 보고하겠다고 왔다. 두 사람이 별도로 지시를 내린 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곤혹스러워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이 문제가 자칫 박근혜 정부 때의 ‘블랙리스트’와 비슷한 형태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모든 일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인식이 마치 사실처럼 확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한상준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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