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왕국’ 꿈꾸는 중동의 ‘석유왕국’

박민우 특파원

입력 2018-04-09 03:00 수정 2018-04-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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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뜨거운 태양이 ‘석유 왕국’의 에너지 지형을 바꿔 놓고 있다. 중동은 풍부한 일조량과 넓은 용지 면적을 갖춰 태양광발전에 최적화된 지역이다. 최근 중동에서 발주한 태양광발전소의 발전 단가는 지난해 전 세계 평균 태양광발전 단가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화석연료는 물론 원자력발전 단가보다 낮은 수준이다. 바야흐로 태양광 시대가 열린 것이다.

풍부한 석유 자원에 의존해 경제 발전을 이뤄낸 중동 산유국들은 최근 국제유가 하락과 실업률 상승으로 위기를 맞았다. 배럴당 100달러가 넘었던 국제유가는 2016년 초 20달러까지 급락했다가 최근 6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석유 산업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면서 국가 경제가 휘청거렸다.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 속에 경제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일본 소프트뱅크와 2030년까지 2000억 달러(약 214조 원)를 투자해 200GW(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사우디에 짓기로 합의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사우디는 소프트뱅크와의 태양광 프로젝트를 통해 일자리 10만 개를 확보하고 국내총생산(GDP)도 120억 달러가량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규모 태양광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가 추진하는 장기 경제계획 ‘비전 2030’의 일환이다.

사우디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은 △일정한 풍속 △풍부한 일조량 △긴 일광시간 △적은 강수량 △광활한 토지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췄다. 사우디의 연평균 태양복사에너지는 m²당 2100kWh 이상으로 한국(m²당 1318kWh)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GCC 국가 면적의 60%가 태양광발전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해당 면적 중 1%만 개발된다 하더라도 470GW 규모의 발전용량 건설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발전 단가가 급속히 떨어지는 추세다. IRENA가 올해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태양광 균등화발전비용(LCOE) 평균은 MWh(메가와트시)당 100달러로 2010년보다 73% 감소했다. 2020년에는 60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LCOE는 원전과 태양광 등 서로 다른 발전원의 경제성을 비교하고자 발전원가에 포함되지 않은 다양한 외부비용을 반영한 지표다.

특히 중동 지역의 태양광발전 단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사우디가 발주한 300MW급 태양광발전소 건설 입찰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미래에너지공사가 제시한 LCOE는 MWh당 17.86달러로 사상 최저가였다.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는 물론 원자력발전 단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중동 태양광 시장이 전 세계 에너지기업의 격전지가 됐지만 한국은 이런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 방한한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한국 정부에 사우디 태양광발전 사업에 한국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태양광 LCOE가 20달러 밑으로 떨어졌지만 국내 기업의 가격경쟁력은 여전히 30달러 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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