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환경파괴에 신음하던 나오시마, 현대미술의 메카로 부활

신현암 팩토리8 대표 , 배미정 기자

입력 2018-04-09 03:00 수정 2018-04-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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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기업 ‘베네세’의 사회공헌

지면에서 솟은 게 아니라 땅에 숨은 듯이 어우러진 일본 나오시마 지추미술관.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의 작은 섬 나오시마는 예술을 사랑하는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현대미술의 메카다. 3년에 한 번씩 예술제가 열리는데 그때마다 100만 명, 열리지 않는 해에는 50만 명 정도 방문한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나오시마의 명소인 베네세하우스를 방문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출판교육 대기업 베네세(Benesse)를 알게 되고 이 회사에 좋은 감정을 갖게 된다. 베네세가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기업 베네세의 예전 이름은 후쿠타케 서점이었다. 창업자인 후쿠타케 데쓰히코가 1955년 주식회사를 만들면서 본인의 성을 땄다. 동네 평범한 책방이었던 후쿠타케 서점은 1995년 베네세로 회사 이름을 바꾸면서 지역 사회와 예술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공헌 기업으로 거듭났다. 회사 이름처럼 나오시마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존재’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베네세란 좋음(well)을 뜻하는 베네(Bene)와 존재(being)를 뜻하는 에세(esse)를 결합한 단어다. 말 그대로 ‘좋은 존재’란 뜻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출판물을 파는 서점이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겠다는 회사의 존재 의의가 담겨 있다. 1986년 창업주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장남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은 “개개인이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교육·어학·생활·복지 분야에서 도움을 주는 회사를 만들자”고 결심한다. 그리고 나오시마 남부 지역을 현대 미술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거대한 꿈을 꾸게 된다.

왜 나오시마인가? 나오시마는 20세기 초 근대화 과정에서 미쓰비시(三菱)가 제련공장을 설립한 곳이다. 경제적으로는 윤택했지만 환경 파괴의 고통에 시달렸다. 특히 1990년대 제련소에서 나온 산업폐기물이 데시마라는 주변 섬에서 발견되면서 큰 사회 문제가 됐다. 미쓰비시는 이 사건을 교훈 삼아 ‘나오시마 에코타운 사업’을 전개해 자원을 재활용하는 모범 기업으로 거듭났다.

미쓰비시 제련공장은 이 섬의 북부에 있다. 하지만 나오시마 남부는 풍광이 뛰어난데도 불구하고 개발이 덜 돼 있었다. 소이치로 회장은 섬 주민의 생활이 문화적으로도 윤택해지길 바랐다. 그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협업해 1992년 현대미술 전시공간과 호텔 객실을 갖춘 베네세하우스를 남부에 개관했다. 1995년에는 아예 회사 이름까지 베네세로 바꾸고, 미술관과 건축물을 하나씩 늘려 갔다. 2004년에는 땅속에 건설했다는 의미의 지추(地中)미술관을 개관했다.

나오시마 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소이치로 회장은 그 주변의 섬들도 현대 예술의 성지로 만들기로 한다. 1990년대 초 산업폐기물로 고통받았던 데시마에는 2010년 단 하나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데시마미술관을 열었다. 미술관 건립을 담당했던 니시자와 류에(西澤立衛)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유명하다. 이곳에 설치된 유일한 작품은 나이토 레이(內藤례)의 ‘모형(母型)’이다. 물방울의 흐름을 통해 엄마, 어머니를 형상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데시마는 나오시마보다 숙식 및 교통이 훨씬 열악하지만 그 열악함이 오히려 좀 더 조용한 곳을 찾고자 하는 고객에게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베네세는 환경 파괴의 상징이었던 섬을 예술의 섬으로 부활시키면서 좋은 존재라는 기업의 이념을 널리 알리게 됐다. 이는 사명을 베네세로 바꿀 정도로 좋은 기업이 되겠다는 소이치로 회장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진심이 담긴 사명은 기업뿐 아니라 지역 사회를 뒤바꿔 놓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nexio@factory8.org·정리=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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