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먹는 청양고추… 농업도 스타트업 산실

김예윤 기자

입력 2018-03-28 03:00 수정 2018-03-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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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이 키우는 ‘도시농부’]
<3>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 청년들


22일 서울 송파구 서울먹거리창업센터 오픈키친에서 홍재완 씨가 자신이 개발한 ‘짜먹는 청양초’ 소스를 활용해 관람객이 시식할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항상 옆에 있는 것은 없어져 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고들 한다. 홍재완 씨(31)에게는 청양고추가 그랬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7년 동안 종종 찌개를 끓이고 조림을 할 때마다 홍 씨는 한국에서 송송 썰어 넣던 청양고추가 없는 게 아쉬웠다. 근처 한인 식료품점 대여섯 곳을 돌았지만 찾기 힘들었다. 고추장, 고춧가루로는 ‘그 맛’이 나지 않았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는 약간 텁텁했어요. 청양고추 맛은 시원한데….”

2015년 일본계 다국적 회사에 취업해 온 일본 나고야에서도 청양고추 구하기는 어려웠다. 이때 와사비 소스가 눈에 들어왔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청양고추 맛을 그대로 살린 소스가 있으면 좋을 텐데….’

지난해 1월 한국지사로 오면서 이 막연한 상상은 현실로 변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내 사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홍 씨는 그해 5월 서울먹거리창업센터를 알게 됐다. 농수산물을 활용한 사업 아이디어가 있는 업체에 6개월씩, 최장 2년간 창업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래, 청양고추 소스!’ 6월 말부터 집에서 가정용 분쇄기로 청양고추를 갈아 소스를 만들었다. 7월 사표를 내고 입주업체를 선정하는 먹거리창업센터 시연회에 나갔다. 튜브에서 소스 대신 물만 나와 쩔쩔맸지만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입주했다.

홍 씨는 센터의 오픈키친에서 본격적인 소스 개발에 돌입했다. 하루에 길게는 10시간씩, 5개월간 청양고추를 2000개 넘게 갈았다. 소금을 비롯한 천연첨가물의 조합과 비율을 다르게 하며 실험을 거듭했다. 센터에서 연결해준 경영전문가와 투자상담가에게서는 구체적인 사업 조언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짜먹는 청양초’ 시제품이 완성됐다. 5월에는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에 가게를 낸다. 홍 씨는 “우리나라는 물론 ‘핫 소스’ 시장이 큰 미국에서도 승산이 있을 것 같다. 유통기한을 늘릴 방법을 연구해 외국인에게 우리 농산물의 참맛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제 첫걸음을 뗀 홍 씨는 ‘레드로즈빈’ 한은경 대표(32·여) 같은 ‘선배’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 한 씨는 팥으로 만든 초콜릿 ‘팥콜릿’, 팥과 장미콩을 함께 끓여낸 ‘팥차’로 지난달 월 매출 1억 원을 올렸다.

한 씨는 10년 전 어머니가 당뇨로 쓰러지면서 팥을 알게 됐다. 버스 운전을 하며 입에 초콜릿을 달고 살던 어머니에게 드릴 단맛 나는 간식거리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팥이었다. 신학대를 다니던 한 씨는 2008년 휴학하고 전남 함평의 유기농 팥 농장에 수시로 내려가 직접 풀을 뽑고 도리깨질해서 얻어 온 팥으로 차를 끓였다. 끓이고 남은 팥 덩어리는 얼핏 초콜릿처럼 보였다. 카카오와 뭉쳐 ‘팥콜릿’을 만들었다. 2012년이었다. 어머니의 혈당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2015년 4월 “나 혼자 먹기 아깝다”는 어머니와 주변의 권유로 ‘레드로즈빈’이라는 1인 기업을 만들어 팥콜릿과 팥차를 제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키우고 싶던 한 씨는 특허권 확보나 투자 유치 등을 제대로 배우고자 지난달 먹거리창업센터에 입주했다. 한 씨는 “외국 디저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우리 곡물로 만든 디저트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 개관한 먹거리창업센터에는 현재 43개 업체(152명)가 입주해 있다. 서울시 도시농업과 조은경 주무관은 “우리 농산물에 도시 청년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더한 스타트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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