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바다 보며 힐링… 해지면 시간이 멈춘 마을로

손가인 기자

입력 2018-03-27 03:00 수정 2018-03-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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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다낭-호이안

베트남 중부 최대 휴양도시 다낭의 보물은 10km로 넓게 펼쳐진 미케 비치다. 야자나무와 어우러진 모래사장이 탁 트여 내·외국인 모두에게 사랑받는다(왼쪽 사진). ‘잊혀진 항구’ 호이안의 ‘올드타운’. 거리마다 내걸린 등불과 꽃나무, 볼거리 많은 가게가 관광객의 발길을 잡는다. 하나투어 제공
원뿔 모양의 전통 모자 논(Non)을 쓰고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평화로운 장면. ‘베트남’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이다. 특유의 여유로움과 시야가 트인 바다는 베트남을 단숨에 대표적인 휴양지로 부상시켰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2014년 15만6900명이던 베트남 패키지 관광 수요는 지난해 25만7000명으로 10만 명 이상 늘었다. 마음 한편에 야자나무 그늘 같은 여유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상 낙원을 찾아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단순히 휴양 관광지만은 아니다. 18세기 후반부터 1945년까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곳. 이후에는 남북 간 이념 전쟁을 20여 년간 치러야 했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 베트남이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견뎌와 더욱 마음이 가는 베트남을 소개한다.


○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 다낭

베트남 중부 최대 휴양도시인 다낭은 현지인들에게도 꼭 살아보고 싶은 꿈의 도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미케 비치. 포브스지가 선정한 아름다운 세계 6대 해변 중 하나다. 10km가량 길게 이어진 해변 곳곳에 세워진 베트남 전통 바구니 배와 서핑을 즐기는 관광객이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낭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내 한가운데 ‘한강(Song Han)’을 품고 있다. 5개의 다리 중 주말 저녁이면 불을 뿜는 ‘용 다리’는 다낭의 상징. 다리 아래를 통과하는 유람선과 강변 루프톱 바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의 야경은 홍콩, 싱가포르 못지않다.

다낭 왼편으로는 ‘바나산’이라 불리는 ‘바나언덕(Bana Hills)’이 있다. 바나나가 많이 열려 이 같은 귀여운 이름이 붙었지만 프랑스 식민지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무더운 베트남 날씨에 지친 프랑스인들이 해발 1492m 바나언덕에 마을을 지어 살았던 것. 그들이 떠난 후 마을은 버려졌지만 지금은 베트남 최대의 관광 기업인 ‘선(Sun)그룹’이 이곳을 사들여 테마파크를 지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케이블카를 타면 발아래 드넓게 펼쳐진 열대우림과 신선계로 올라가는 것 같은 구름 속 전경을 만끽할 수 있다.

베트남 국토의 남과 북을 잇는 길목인 하이반 고개는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다. 이곳에는 전쟁 당시 요새로 썼던 폐허가 남아 있는데 건물 벽에 고스란히 남은 총알 자국이 처연하다. 그러나 ‘바람과 구름’이라는 이름답게 천혜의 자연도 만끽할 수 있어 우측으로 해변을 낀 드라이브 코스로도 사랑받고 있다.

남중국해를 향해 뻗은 손짜 산봉우리에는 ‘영혼이 응답하는 절’인 영응사(靈應寺)가 있다. 공산주의를 피해 자유를 찾아 떠났다가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만든 곳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죽은 자들을 향해 인자하게 미소 짓는 동양에서 가장 높은 67m 해수관음상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안식을 선사한다.


○ 잊혀진 항구, 호이안

다낭 근교 도시 호이안은 해양 실크로드의 주요 항구 도시였다. 투본강을 따라 형성된 중국, 일본 상인 지구는 16, 17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세기 이후 항구가 다낭으로 이전하면서 ‘잊혀진 항구’가 됐고 그 덕에 베트남전 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호이안 올드타운은 사람이 페달을 밟아 전진하는 삼륜 자전거 시클로를 타야만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거리 곳곳에 흐드러진 꽃과 등불, 지나는 여행객의 행렬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들이 명물이다. 밤이 되면 강변 가게에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여행자들은 소원을 빌고 강물 위에 촛불 등을 띄운다. 붐비는 야시장과 유유히 흘러가는 촛불 행렬의 대조가 몽환적이다.

투본강 변에 있는 또 다른 마을, 탄하 도자기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도자기를 만든다. 원숭이와 돼지 등 다양한 동물 모양으로 빚은 도자기를 무심하게 길거리에 내놓고 말리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곳에는 지름 1cm 정도의 작은 열매가 달린 나무가 많은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검치 나무’라고 부른다. 새빨간 열매를 먹으면 이가 새카맣게 물들기 때문이다.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와 젊은 여성들을 잡아갈 때 여성들은 이 열매를 따서 주머니에 몰래 넣어뒀다가 열매가 익으면 이를 입안에 넣고 터뜨렸다. 더러워진 이를 보고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을 버리고 떠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검어진 이는 다시는 하얗게 돌아오지 않는다. 마을에는 아직도 이가 검은 할머니들이 많다고 한다.

베트남은 여전히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견뎌내고 있는 동시에 생기 넘치는 관광지이기도 했다. 천혜의 자연환경은 그야말로 베트남의 보물이다. 차와 오토바이, 자전거가 뒤섞여 느리게 달리는 도로와 스쿠터를 타고 나란히 걷듯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운전하는 사람들. 길거리마다 낮은 의자와 테이블을 펼쳐두고 베트남식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서툰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하고 정겹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야말로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 묻지 않은 순박한 미소로 환하게 반기는 사람들만으로도 베트남을 방문할 이유는 충분하다.

다낭·호이안=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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