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車 수입쿼터 상향… 車 부품시장 추가개방은 막아

이건혁 기자

입력 2018-03-26 03:00 수정 2018-03-2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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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통상전쟁]한미FTA 개정협상 사실상 타결



“한미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마무리에 매우 근접했다. 훌륭한 동맹과 훌륭한 타결을 할 것이다.”

23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이 발언한 것은 한미 FTA 협상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러스트벨트(낙후된 북부·중서부 제조업 지대) 유권자를 만족시킬 만한 수준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5일 한국 기자들에게 농산물시장 보호 등의 성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얻은 게 있으면 내준 것도 있는 게 협상의 속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동차 등 한국 주요 산업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 철강관세 협상과 묶어 속전속결 처리



이달 초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철강 관세 폭탄을 부과할 때만 해도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한미 FTA 개정협상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철강 관세를 무기 삼아 한미 FTA 개정과 관련된 요구사항을 확대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국은 속전속결을 택했다. 한국은 자동차 분야에서 일부 양보하면서도 ‘레드라인’으로 선언한 농산물 추가 개방을 피했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반면 대한(對韓) 무역적자 축소를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조기 개정을 통해 자신의 업적을 내세울 수 있게 됐다. 양쪽 모두 이익을 얻는 모양새로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하는 것이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 셈이다.

실제 김 본부장이 이번 합의를 통해 얻은 성과를 설명하면서 전면에 내세운 것도 미국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을 조기에 제거한 점이다. 실제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불사할 정도의 강경 기조인 상황에서 협상이 장기전으로 흐를 경우 기업들은 경영상의 결단을 내리지 못해 불이익을 볼 수 있다.


○ 포드차 수입 늘어도 타격 크지 않을 듯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마무리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5일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인천=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런 점 때문에 정부가 미국 측 관심 사안이었던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을 전격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말 국회에 한미 FTA 개정협상 추진계획을 보고하며 미국이 “자동차 분야의 비관세장벽 해소 등 시장접근 개선에 관심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에 미국의 안전 기준만 충족하면 한국에 팔 수 있는 차량 대수를 업체당 2만5000대에서 상향 조정하거나 아예 폐지했을 수 있다.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픽업트럭 관세(25%)를 유지해달라는 미국 측 요구도 정부가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자동차 3사인 포드, 캐딜락, 크라이슬러의 국내 판매량이 지난해 기준 2만19대 수준이다. 물량이 많지 않아 국내 시장에 큰 타격이 없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픽업트럭도 한국 완성차 업계의 주력 상품이 아닌 만큼 매출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산 부품 사용 비율을 늘려달라는 미국 측 요구를 막아낸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부품 사용 확대는 미국 입장에서 자동차 적자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데 이를 막아냈다는 건 큰 성과”라고 봤다. 다만 미국이 부품사용 비율 확대 요구를 포기했다는 건 다른 쪽에서 더 많은 걸 얻어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부가 농산물 추가 개방을 지켜낸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애초부터 미국은 농산물 추가 개방에 큰 관심이 없었다”며 “농산물이 논의될 경우 미국도 한국의 여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 당연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 통상 갈등 끝나지 않았다

한미 FTA 개정이 신속히 진행된 데는 철강 관세 부과가 지렛대 역할을 했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미국이 철강 제품에 25% 관세 부과를 선언하자 한국은 이달 중순 열린 제3차 한미 FTA 개정협상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양국이 한미 FTA 개정협상을 통한 자동차 시장 개방과 철강 관세 면제를 맞바꾼 셈이라는 분석도 있다.

철강 관세에 대해서는 조건부이긴 하지만 완전 면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잠정 유예’였지만 이보다 진전된 상황이라는 건 결국 완전 면제밖에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이 최근 철강 관세 면제를 받은 국가들을 대상으로 쿼터를 부여할 가능성을 내비친 점이 변수다. 한국 외에 관세 협상을 진행 중인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등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한국과의 구체적 협상 내용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한미 FTA 타결로 미국과 통상협상이 일단락된 듯하지만 글로벌 무역전쟁 과정에서 한국에 영향을 주는 통상 이슈가 다시 고개를 들 여지가 있다고 봤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는 “미국과의 통상 갈등을 해결하려면 양자 협상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자 체제인 세계무역기구(WTO),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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