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표 던지는 국민연금… 기업들 주총 비상

송진흡 기자 , 김상훈 기자 , 김지영 기자

입력 2018-03-23 03:00 수정 2018-03-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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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결권 행사 확대 본격 시행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삼성물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자 사내외 이사 선임 안건 여부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전날 국민연금이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 등 4명에 대한 이사 선임을 반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결과는 국민연금의 의도와 달리 4명 모두 새로운 이사가 됐다. 국민연금보다 삼성에 우호적인 지분이 많았던 덕분이다.

국민연금이 주주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나서면서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삼성물산 사례처럼 국민연금이 이사회 구성 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장기 경영 전략이나 배당 성향 결정 과정에서 마찰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앞세워 민간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견제로 기업 경영이 투명해질 것이라는 반론도 적잖다.


○ 국민연금은 ‘큰손’…잘못 쓰면 ‘흉기’가 될 수도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기업은 290개. 이 중 10%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상장사도 90개에 이른다.

국민연금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분 9.03%를 보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0.11%, 현대자동차는 8.02%, 포스코는 10.56%, LG화학은 9.74%, 네이버는 11.22%다. 특히 포스코와 네이버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이 3대 주주였던 삼성물산과 달리 국민연금 의도대로 이사회 구성이나 경영전략 수립 등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에 상장된 대부분의 대기업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대주주인 만큼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기업의 의사 결정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전문성과 독립성이 관건

국민연금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지 않았다. 친기업적인 성향을 가진 우파 정권 특성상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좌파 정권 특성상 대주주로서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관여하려는 기류가 거세졌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이달 16일 정부가 내놓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확대 방침이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는 이번 조치에 대해 외부 인사로 구성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가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전문성과 독립성에 바탕에 둔 것이란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비율에 문제가 있다며 이사 선임에 반대한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간 커넥션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손성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아 구체적인 정황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단지 의사 결정에 참여했다고 재선임에 반대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잘못된 국민연금 전문위원회의 의사 결정에 대한 제재 방안도 마땅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국민연금에 돈을 낸 국민에게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송진흡 jinhup@donga.com·김상훈·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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