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현 “연출의 색깔이 꼭 있어야 할까요?”…김정호 “조연인 제게 연기상을 주시다니…”
김정은기자
입력 2018-03-06 03:00 수정 2018-03-06 03:00
제54회 동아연극상 2관왕 오른 ‘가지’ 연출가 정승현-배우 김정호
작품상과 연기상 동시 수상작…18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서 공연
정승현 연출 홀로서기 후 만든 작품…“음식 통해 한민족 뿌리 재발견” 평가
18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가지’는 올해 제54회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과 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다.
‘가지’는 재미교포 2세 요리사인 아들 레이와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낯선 재회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말을 모르는 레이가 생전 아버지가 드시던 음식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를 알아가며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렸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들은 “음식을 소재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한민족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의미를 지닌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가지’의 정승현 연출가(40)와 삼촌 역을 맡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거머쥔 배우 김정호(47)를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에서 최근 만났다. 두 사람에게 동아연극상은 어떤 의미였을까.
정 연출가는 13년간 극단 작은신화의 조연출로 일하다 지난해 독립했다. 홀로서기를 한 첫해에 올린 작품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았다.
“누군가 제게 연출의 색깔이 뭐냐 물어보면 늘 저는 ‘없다’고 말해요. 연출의 색깔이 꼭 있어야 할까요? 지난해 ‘가지’ 초연 때 누군가 제게 ‘넌, 참 착한 연극을 한다’고 하더군요. 동아연극상은 제게 ‘착하게 연극해도 돼. 그러니 좀 더 해봐’라고 격려해준 상이에요.”(정승현)
삼촌 역의 김 씨는 극이 시작되고 무려 54분 뒤에 처음 등장한다. 분량이 많진 않지만, 짧고 굵은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조연이라도 임팩트가 있는 경우 신인상을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하지만 연기상은 거의 주연 배우들의 몫이었어요. 그런데 조연인 제게 연기상을 주시다니….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내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선례가 된 것 같아요.”(김정호)
특히 김 씨에게 이번 동아연극상은 겹경사였다. 시상식 당시 ‘가지’와 함께 공동으로 작품상을 탄 ‘손님들’의 대표 수상자로 그의 아들인 배우 김하람(26)이 나섰기 때문이다. 김하람은 ‘손님들’에서 주인공 ‘소년’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극단 풍경 출신인 김 씨가 지난 3년간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활동한 데에는 아들의 영향이 컸다.
“아들의 대학 입학을 앞둔 2015년, 등록금 마련을 위해 고민하다가 안정적으로 연극할 수 있는 국립극단 시즌 단원 오디션에 도전해 덜컥 합격해 3년간 활동했죠.”(김정호)
두 사람이 이번 무대에서 가장 고민한 것은 뭘까. 정 연출가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는 레이의 대사 중에 ‘누가 죽어 가는 걸 본 적 있어?’라는 표현이 있다”며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는 마음이 과연 어떨지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극 중 김 씨 연기의 백미는 ‘소고기뭇국’ 장면이다. 임종을 앞둔 형이 미국 이민을 앞두고 어머니가 끓여준 소고기뭇국을 한 사발 들이켰던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으로, 군침을 흘리며 맛깔나게 대사를 ‘치는’ 연기가 일품이다. 그는 “음식이란 게 때때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묘한 매개체”라며 “어머니의 사랑이 들어간 음식이란 걸 생생하게 전하고 싶었던 장면”이라고 전했다. 배우의 연기는 시각, 청각, 미각, 촉각을 통해 관객에게 입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전석 3만 원. 1644-2003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작품상과 연기상 동시 수상작…18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서 공연
정승현 연출 홀로서기 후 만든 작품…“음식 통해 한민족 뿌리 재발견” 평가
18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가지’는 올해 제54회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과 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다.
‘가지’는 재미교포 2세 요리사인 아들 레이와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낯선 재회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말을 모르는 레이가 생전 아버지가 드시던 음식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를 알아가며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렸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들은 “음식을 소재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한민족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의미를 지닌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가지’의 정승현 연출가(40)와 삼촌 역을 맡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거머쥔 배우 김정호(47)를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에서 최근 만났다. 두 사람에게 동아연극상은 어떤 의미였을까.
정 연출가는 13년간 극단 작은신화의 조연출로 일하다 지난해 독립했다. 홀로서기를 한 첫해에 올린 작품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았다.
“누군가 제게 연출의 색깔이 뭐냐 물어보면 늘 저는 ‘없다’고 말해요. 연출의 색깔이 꼭 있어야 할까요? 지난해 ‘가지’ 초연 때 누군가 제게 ‘넌, 참 착한 연극을 한다’고 하더군요. 동아연극상은 제게 ‘착하게 연극해도 돼. 그러니 좀 더 해봐’라고 격려해준 상이에요.”(정승현)
삼촌 역의 김 씨는 극이 시작되고 무려 54분 뒤에 처음 등장한다. 분량이 많진 않지만, 짧고 굵은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조연이라도 임팩트가 있는 경우 신인상을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하지만 연기상은 거의 주연 배우들의 몫이었어요. 그런데 조연인 제게 연기상을 주시다니….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내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선례가 된 것 같아요.”(김정호)
특히 김 씨에게 이번 동아연극상은 겹경사였다. 시상식 당시 ‘가지’와 함께 공동으로 작품상을 탄 ‘손님들’의 대표 수상자로 그의 아들인 배우 김하람(26)이 나섰기 때문이다. 김하람은 ‘손님들’에서 주인공 ‘소년’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극단 풍경 출신인 김 씨가 지난 3년간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활동한 데에는 아들의 영향이 컸다.
“아들의 대학 입학을 앞둔 2015년, 등록금 마련을 위해 고민하다가 안정적으로 연극할 수 있는 국립극단 시즌 단원 오디션에 도전해 덜컥 합격해 3년간 활동했죠.”(김정호)
두 사람이 이번 무대에서 가장 고민한 것은 뭘까. 정 연출가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는 레이의 대사 중에 ‘누가 죽어 가는 걸 본 적 있어?’라는 표현이 있다”며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는 마음이 과연 어떨지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극 중 김 씨 연기의 백미는 ‘소고기뭇국’ 장면이다. 임종을 앞둔 형이 미국 이민을 앞두고 어머니가 끓여준 소고기뭇국을 한 사발 들이켰던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으로, 군침을 흘리며 맛깔나게 대사를 ‘치는’ 연기가 일품이다. 그는 “음식이란 게 때때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묘한 매개체”라며 “어머니의 사랑이 들어간 음식이란 걸 생생하게 전하고 싶었던 장면”이라고 전했다. 배우의 연기는 시각, 청각, 미각, 촉각을 통해 관객에게 입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전석 3만 원. 1644-2003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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