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걸리는 계산, 1시간 만에 뚝딱… 한국 ‘슈퍼컴퓨터’ 80배 세졌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8-02-02 03:00 수정 2018-02-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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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 5호기, 6월 공식 운영
기존 4호기보다 성능 80배 뛰어나… 세계 성능 순위는 10위권 예상
빅데이터-인공지능 연구에 적합
대용량 컴퓨터 시스템 필요한 교통 흐름 분석 등에 큰 도움될 듯


“여기 작은 상자가 보이죠? 이것 하나하나가 모두 개인용 컴퓨터보다 수십 배 성능이 뛰어납니다. 이런 것 100만 대를 하나로 묶어주면 마침내 세계 10위권 성능의 ‘슈퍼컴퓨터’가 되는 겁니다.”

지난달 29일 오광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서비스센터장이 새로 도입한 슈퍼컴퓨터 5호기 시스템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흥분과 기대가 묻어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는 구입 후 한두 시간만 고생하면 사용할 수 있지만 슈퍼컴퓨터는 다르다. 복잡한 케이블 설치 작업과 지루한 테스트를 수없이 반복해야 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9년 전 도입했던 슈퍼컴퓨터 4호기는 1, 2차로 나눠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총 설치 시간만 2년이 넘게 걸렸다.

그나마 요즘은 설치가 쉬워진 편이다. 과거에는 부품을 모두 들여온 다음 현장에서 시스템을 일일이 조립했다. 그러나 5호기는 제조사인 크레이(CRAY)에서 기본적인 제작을 마쳐 캐비닛 120개에 담아 그대로 운송해 왔다. 오 센터장은 “케이블을 연결하고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주면 되니 일이 훨씬 간편해졌다”고 말했다.

슈퍼컴퓨터 5호기는 9년 만에 교체되는 것이다. 성능은 기존 4호기의 80배 수준이다. 연산 속도는 25.7PFlops(페타플롭스·1PFlops는 1초에 1000조 번 연산)에 달한다. 70억 명이 하루 24시간을 꼬박 투자해 40년 걸리는 계산을 단 1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 현재 기준으로 세계 7위에 해당하지만 6월 설치 완료 후 공식 순위에선 10위권 정도로 예상된다.

슈퍼컴퓨터란 성능이 세계 500위 안에 드는 컴퓨터를 말한다. 4호기는 이미 지난해 500위 밖으로 밀려났다. 슈퍼컴퓨터 교체 주기는 5년인데 그보다 4년 이상 더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년간 정부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결국 KISTI는 4900만 달러(약 525억 원)를 투입해 2017년 9월 5호기 구축을 확정했다. 5호기만의 자랑인 ‘버스트버퍼’ 시스템에 거는 기대도 크다. 대용량 저장장치 외에 추가로 1PB(페타바이트·1PB는 고화질 영화 20만 편 분량)의 초고속 저장장치를 설치해 검색 및 자료 저장 시간을 줄인 시스템이다. 5호기의 하드디스크 용량(자료 저장량)은 20PB에 달한다. 이런 대용량 저장장치를 일일이 검색하고 자료를 저장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슈퍼컴퓨터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1988년 도입한 1호기는 커다란 캐비닛 정도 크기였던 데 비해 2호기는 작은 방 하나, 3호기는 넓은 방 하나가 필요했다. 4호기는 건물 두 개 층을 거의 다 사용했다. 5호기는 아예 전용 건물에서 운영된다. 이에 대비해 KISTI는 수년 전부터 본관 건물 옆에 연면적 7780m² 규모의 ‘슈퍼컴퓨팅센터 복합지원동’을 건립해 왔다. 이 건물은 당분간 슈퍼컴퓨터 5호기 운영에 쓰인다. 1년 총 유지비는 40억 원가량. 이 중 전기 요금만 약 25억 원이 들어간다.

과학기술자들은 슈퍼컴퓨터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4호기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한 기관은 200여 개. 우주와 대기환경, 기계, 항공 분야에서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에 주로 활용됐다. 2013년 노벨상 수상 연구인 ‘힉스 입자’ 발견 연구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2017년 노벨상을 수상한 ‘중력파 검증 실험’에도 참여하는 등 세계 과학기술 발전에도 기여했다.

KISTI는 5월부터 5호기의 시범서비스를 시작하고 6월 공식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빅데이터, 인공지능 연구 등에 특히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오 센터장은 “교통 흐름 분석 등 그동안 대용량 컴퓨터 시스템이 필요해 도전하기 어려웠던 사회 문제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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