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이야기가 있는 마을] 효심 깊은 아들 게와 학이 함께 옮긴 ‘작은 섬’

이해리 기자

입력 2017-12-28 05:45 수정 2017-12-28 05:45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잔잔한 파도 뒤로 펼쳐진 소나무 숲이 풍류마을을 감싸고 있다. 고흥|김민성 기자 marinboy@donga.com

<16> 풍류마을 ‘학무도’ 설화

아픈 어미 게 위해 산을 옮기려던 아들 게
산 밑에 깔려 위태로운 순간 학이 도와줘
육지를 잇는 길이 생겼지만 섬 형태 여전
양옆 해변이 날개 같다며 학무도라 불려

오랜 세월 척박했던 땅. 그만큼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강하고 질긴 태도와 능력으로써만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쌓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밝고 슬프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 설화는 그렇게 오래도록 쌓여 전해져오고 있다. 전남 고흥군은 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반도의 토양 위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가 풍성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류몽인이 이 곳에서 ‘어우야담’을 쓸 수 있었던 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야기가 있는 마을’을 통해 고흥의 설화를 소개했던 스포츠동아는 올해도 5월4일부터 고흥의 새로운 설화를 소개해왔다. 8개월 동안 연재한 ‘이야기가 있는 마을’ 시즌2를 마무리한다. 고흥의 설화가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따뜻이 적셨기를 바란다.

풍류마을이라는 이름과 퍽 어울리는 모습이다. 고흥군 두원면 풍류리 서쪽에 자리 잡은 풍류마을과 그 일대 풍류해수욕장은 잔잔한 파도와 백사장 주변에 높이 솟은 소나무 숲이 만들어내는 정겨운 풍경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스하게 해준다.

해수욕장 서쪽에는 작은 배들이 오가는 방파제가 있고, 동쪽으로는 아담한 백사장이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조용하게 흐르는 남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풍요로운 풍광은 이 곳을 찾아오는 누구나의 마음을 넉넉하게 채워줄 것만 같다.

바다를 품은 마을에는 유독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내려온다. 풍류마을 서쪽 방파제 옆 작은 섬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지금은 ‘학무도’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오래 전부터 ‘할미섬’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섬이라기보다는 얼핏 바다와 맞닿아 있는 큰 바위로도 보이는 이 곳에는 아픈 어미 게와 효심이 지극한 아들 게에 얽힌 신비한 이야기가 있다.

풍류해수욕장. 고흥|김민성 기자 marinboy@donga.com


● 효심이 만든 바다 위 ‘작은 섬’

학무도는 풍류해수욕장과 바로 붙어있어 이 마을에 오래 산 사람들이라면 그 존재를 모를 수 없다. 바닷가 한 쪽 방파제에서 그물 손질에 한창이던 수산1호 선장 이래현(50) 씨는 학무도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정확한 위치를 짚어주면서 “동네 토박이라서 학무도 얘기는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듣고 자랐다”고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게가 섬을 옮겼다는 말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어릴 땐 어른들이 해주는 말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대로 믿어버렸지. 지금은 섬 한쪽으로 민박집도 생기고, 해수욕장도 잘 만들어져서 자세히 살펴봐야만 섬인지 알 수 있어.”

고흥에서 내려오는 설화 대부분이 그렇듯 학무도에 얽힌 이야기 역시 부모를 향한 지극한 효심에 관한 내용이다.

옛날 풍류마을 앞 바다에 아픈 어미 게와 아들 게가 살았다. 효심이 깊은 아들 게는 어미의 병을 낫게 하려 여러 방법을 찾았지만 소용없었다. 어느 날, 어미 게가 말했다.

“아프고 보니 늘 바닥만 기어 다닌 세월이 아쉽구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구나.”

아들 게는 고민에 빠졌다. 갑자기 섬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노릇. 궁리 끝에 바닷가 근처 작은 동산을 바다로 옮겨와, 어미에게 섬을 선물하자고 생각했다. 아들 게는 “간절한 마음이 가득하면 못 이룰 게 없다”고 다짐하면서 산 밑으로 기어들어가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옮겨질 리 없었다. 오히려 산 밑에 깔려 목숨마저 위태로운 순간. 갑자기 하늘에 학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학은 산꼭대기를 부리로 집어 가뿐하게 들어줬고, 그 도움으로 아들 게는 무사히 바다 가운데로 산을 옮겼다.

아들 게가 학을 바라봤다. 바로 얼마 전, 자신이 구해준 다리 다친 학이었다. 말끔히 나은 그 학이 아들 게가 처한 어려움을 알고 찾아와준 것이다. 마침 바닷가에서 물질을 하던 한 노파는 게가 업고, 학이 물어 산을 옮기던 모습을 목격했다. 놀란 노파는 마을 사람들에 그 소식을 알렸고, 바닷가에 느닷없이 생긴 섬을 본 사람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이후 그 섬은 할머니가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할미섬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효심 깊은 아들 게가 옮겨놓은 섬을 본 어미 게의 병이 말끔히 나았음은 물론이다.



● 학이 양쪽 날개를 편 모습

세월이 흘러 섬은 육지와 맞닿게 됐다. 방파제가 생기고, 그 위로 차가 오갈 수 있는 작은 길이 생기면서다. 그래도 여전히 섬의 형태는 남아있다.

지금 풍류마을 사람들은 할미섬 대신 학무도라고 부른다. 섬의 양 옆으로 해변이 생기면서 마치 그 모습이 ‘학이 양쪽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학무도 바로 옆에 작은 집을 짓고 민박집을 운영하는 50대 여주인은 “지금은 육지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피면 섬의 모습은 남아있다”고 했다. “학이 섬을 물고, 게가 밑에서 받치면서 이 섬을 옮겼다는 설화를 오래전부터 들어왔다”고도 했다.

게와 학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이야기가 깃든 풍류마을은 고흥군에서도 탁월한 경치로 손꼽히는 곳이다. 섬을 등지고 바라보면 쪽빛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아스라이 높은 산이 보이기도 한다. 풍류마을 건너편은 보성군 객산리. 두 고장을 사이에 둔 바다가 만들어내는 진귀한 풍경이 학무도의 신비감을 배로 높이는 듯 하다.


■ 설화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 그동안 ‘고흥군과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마을’을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고흥|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관련기사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