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분리 완화 사실상 반대… 인터넷銀 확산에 제동 걸릴듯

강유현기자 , 송충현기자

입력 2017-12-21 03:00 수정 2017-12-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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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혁신위 ‘문재인 정부 코드’ 논란… 산업발전 보다 노조에 힘실어줘
“민간금융 CEO 셀프연임 안돼”… 국민연금 통한 정부개입 우려도


금융행정혁신위원회(혁신위)가 20일 발표한 최종 권고안에는 노동이사제 도입과 함께 은산분리 완화 반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 등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거나 현 정부의 ‘코드’에 맞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이번 권고안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만 힘을 실어주고 있을 뿐 4차 산업혁명 대응이나 노동개혁처럼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시급한 과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성 지적이 적지 않다.


○ 막강 금융 노조에 힘 실어준 정부 자문기구

혁신위는 금융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민간 금융회사에 근로자 추천 이사제를 각각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공공기관은 노조 대표가 경영에 참여해야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민간 회사에서는 근로자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통해 노동자와 고객, 주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입장이 경영에 반영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미 금융권에서 노조의 영향력이 막강한 상황에서 이번 권고안은 노조의 과도한 경영 개입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특히 노동이사제는 독일 등 유럽 19개국이 도입했지만 한국은 노사 협력이 잘 정착된 유럽과는 기업문화가 달라 이를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잖다.

혁신위는 민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도 언급했다. 윤석헌 혁신위원장은 “최고경영자(CEO)가 사외이사들을 선임하고, 그 이사들이 CEO를 재선임하는 식으로 ‘셀프 연임’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부 금융지주사의 CEO 선임 절차에 제동을 걸고 있는 금융당국의 주장과 인식을 같이하는 것이다. 혁신위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회장 및 사외이사를 추천할 때 노조와 주주, 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추천한 인재풀을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경우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가 우회적인 관치를 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혁신위는 은산분리 완화에 대한 반대 입장도 내놨다. 윤 위원장은 “은산분리 완화가 한국 금융 발전의 필요조건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득과 실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앞서 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공약집에서 은산분리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은산분리 완화가 무산되면 핀테크 혁명의 상징 격인 인터넷전문은행의 발전이 사실상 어려워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금융개혁’의 최대 과제를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두고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했던 지난 정부와 달리 정권이 바뀌자 손바닥 뒤집듯이 정책 기조를 바꿔 금융산업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문종진 명지대 경영대 교수는 “금융권 노조는 은산분리 완화가 시행되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그간 반대해 왔다”며 “노조의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금융산업의 발전보다는 노조의 요구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과징금 대상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논란도 다시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회장이 2008년 삼성 특검에서 확인된 차명계좌를 실명계좌로 전환하지 않고 4조4000억 원을 되찾아가면서 수천억 원 규모의 세금과 과징금을 모두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특검 조사로 인해 실소유주가 따로 있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소득세 부과 대상은 맞지만 차명계좌가 ‘실제 사람’의 이름으로 개설됐기 때문에 과징금 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혁신위는 이 같은 금융위 판단을 뒤집었다. 1993년 금융실명제 이후 개설된 차명계좌(1001개), 금융실명제 이전에 개설됐으나 향후 이 회장이 아닌 타인의 명의로 전환된 계좌(20개) 등 1021개의 차명계좌가 과징금 및 소득세 부과 대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 혁신위는 금융위가 이 회장의 차명계좌 전반을 재점검하고 과세당국과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향후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도 봤다.

혁신위는 ‘금융상품에 대한 판매중지명령권 제도’ 도입도 권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많은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입은 ‘키코(KIKO)’ 같은 금융상품에 대해 금융위가 직권으로 상품 판매를 중단시킬 수 있는 제도다.

강유현 yhkang@donga.com·송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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