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 中 꺾고 8년만에 수출길

이건혁기자

입력 2017-12-07 03:00 수정 2017-12-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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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조원 英원전 우선협상자 선정
국내 脫원전 바람에도 기술력 입증… ‘원전 굴기’ 중국의 거센 공세 차단
2009년 UAE 이어 수출 다시 물꼬… 사우디-체코 등 입찰에 유리한 고지


《한국이 중국 등을 제치고 영국 무어사이드 원자력발전소 사업권을 인수할 기회를 따냈다. 사업권 인수가 확정되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이어 두 번째 원전 수출이 이뤄지게 된다. 한국전력공사는 6일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자인 영국 뉴젠사의 지분 100% 인수를 위한 배타적 협상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1∼6월)에 지분 인수 협상을 완료하고 영국 의회의 최종 승인을 받으면 무어사이드 사업권은 한전으로 완전히 넘어온다. 양측은 신고리 원전 5, 6호기 등과 같은 모델인 APR-1400을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무어사이드 사업은 영국 북서부에 사업비 21조 원을 들여 신규 원전 3기를 건설해 운영하는 프로젝트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까다로운 안전 기준을 가진 영국이 한국형 원전 건설을 수용한 건 한국의 기술력과 안전성을 인정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거대 자금력을 등에 업은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고 사업권 확보를 코앞에 뒀다는 것 자체가 한국 원전 역사를 새로 썼다는 의미도 있다. 향후 정부 탈원전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국 북서부에 원전 3기를 건설하는 무어사이드 프로젝트는 사업권을 컨소시엄 회사인 ‘뉴젠’이 보유하고 있다. 일본 도시바가 지분 100%를 갖고 있으나 자금 사정 악화로 사업권 매각을 시도했다. 한전은 올해 3월 인수 참여를 선언했다.

6일 한전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당초 한전이 뉴젠 지분을 인수하는 것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국 원전의 안전성과 기술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7월 영국 정부가 뉴젠에 한국산 원전 모델인 APR-1400을 채택해도 좋다고 전달하며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원전 굴기’를 부르짖으며 선진국 원전 시장 진출에 나선 중국의 거센 공세가 매서웠다. 한전의 뉴젠 인수 여부도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중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막대한 자본력을 내세우며 도시바와 영국 측의 환심을 샀다. 반면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탈원전 정책으로 돌아서며 정부 지원 여부 자체가 불투명했다.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줄줄이 백지화되고 건설하던 신고리 5, 6호기마저 공사가 일시 중단되면서 원전 해외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하지만 10월 APR-1400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 획득에 성공하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정부가 “탈원전과 원전 수출은 별개”라는 방침을 정하면서 정부와 원전업계가 점차 손발을 맞추는 모양새도 보여줬다. 때마침 신고리 5, 6호기 공사가 재개된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11월 말에는 백운규 산업부 장관과 조환익 한전 사장 등이 함께 영국을 찾아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을 예방하고 ‘한영 원전협력 각서’를 맺는 등 영국 원전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한전은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지만 사업권을 최종적으로 따오려면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어사이드 프로젝트는 사업자가 건설비를 조달해야 하고 완공 후 전기를 팔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구조다. 한전이 얼마나 좋은 조건으로 건설비를 조달할지, 전기 판매로 얼마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 등이 향후 사업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은 UAE 정부가 사업을 발주해 한국은 자금 걱정 없이 공사만 하면 됐다. 산업부 측은 “자금 조달 계획을 바탕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적자가 예상된다면 무리해서 사업을 추진할 근거를 잃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이 영국 원전 사업권을 최종적으로 확보하면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등 앞으로 예정된 해외 원전 수주에도 파란불이 켜진다. 다만 국내 신규 원전의 추가 건설이 백지화된 상황에서 원전에 대한 추가 투자, 인력 양성이 불투명해진 게 변수다. 원전 산업 생태계가 약화돼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국 원전의 경쟁력이 확인된 만큼 원전 전문 인력과 수주 노하우를 유지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세종=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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